[노트북을 접으며] 죽음의 땅에 억류된 한국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었다.

지난 달 11일 미국인 닉 버그씨가 참수되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불과 사흘 전 미국인 폴 마셜 존슨씨가 이슬람 무장 테러단체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만해도, 남의 일인 양 여겨졌다. 한국인에 대한 테러의 우려는 막연함 속에 둘러싸인 채 우리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다 월요일인 21일, 마침내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날 아침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한국인 김선일(33)씨가 이라크 저항단체에 피랍된 장면이 보도됐다. 지난해 11월 오무전기 직원들이 티그리트 고속도로상에서 총격을 당해 4명이 사상했고, 올해 4월에도 한국인 목사 일행 등에 대한 피랍 사건이 두 번이나 일어나는 등 한국인에 대한 테러만 네 번째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최근 내려진 한국군의 추가 파병 결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김씨를 납치한 단체는 “ 한국군의 철수와 추가 파병 철회”를 요구했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위해를 가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사회기반 시설 재건과 평화유지 업무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추가 파병이 되면 한국은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하는 셈이 된다. 반미 저항 단체가 반감을 가질 만도 하다.

우리 정부는 “ 무고한 시민은 조속히 석방돼야 한다”는 촉구와 함께 파병 방침을 재확인했다. 최영진 외교통상부 차관은 “ 우리의 이라크 파병은 이라크 재건과 지원을 위한 것”이라며 “ 이 같은 우리의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도 “ 한국군은 유엔 결의안에 따라 평화 재건의 목적으로 이라크로 가는 것”이라며 “ 인질 석방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한국군 철군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금 당장 우리 정부가 할 일은 하나 밖에 없다. 사지(死地)에 갇혀 있는 김씨를 무사히 구출해 내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 결정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도, 테러 위험에 대한 정부의 안전 조치에 소홀함이 있었는지를 나무라고 재점검하는 것도 그 다음에 할 일이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 2004-06-24 10:30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