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김현희와 세 책


KAL858기 가족회의 사무국장 신동진(다큐멘터리 감독, ‘KBS 열린 채널-KAL858기 실종자 가족의 호소’ 감독)은 7월1일 ‘KAL858 무너진 수사 발표’라는 책을 냈다. 세상에서는 1987년 11월29일 미얀마 해협에서 사라진 사건을 KAL 폭파 사건이라 부르지만 그는 ‘KAL 실종사건’이라 규정했다.

그는 출간 이유를 요약했다. “첫째는 국민들에게 의혹의 전모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도대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무슨 가정을 하고 있기에 저런 의혹을 제기하나’라는 상식적인 궁금증에 솔직하게 답함으로써, 의혹 제기의 속뜻까지 적나라하게 평가 받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KAL858기 실종 사건의 의혹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정부 관계당국과 정부기관 안에 있기도 한 과거 사건 관련자들에게 분명한 답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질문이 엉성하면 답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질문을 하지 않으면 답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소 위협을 무릅쓰고 이런 방법을 택했다.”

이 사건을 1심에서 국선 변호인으로, 2ㆍ3심은 무료 사설 변호인으로 맡은 안동일 변호사는 그의 책 발간에 앞서 5월31일 ‘나는 김현희의 실체를 보았다’는 책을 냈다. KAL기 폭파사건임을 명백히 한 그는 ‘가족 회의’ 등이 제시한 질문에 여러 차례 김현희와 가진 신문, 인터뷰, 사적인 교류를 되뇌이며 의문의 실체에 답했다.

“이 책을 쓰면서 속된 말로 이렇게 뿔다귀 날 줄은 미처 몰랐다. 몇 번이나 그만둘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쓰는 1년 동안 KAL기 사건 의혹설이 각종 매체를 통해 계속 제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부터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대로 KAL기 사건은 남한 정부가 조작한 것이며 김현희가 가짜라면 변호인이었던 나는 속았으며 결국 가짜 재판 이야기를 쓰는 셈이니 오죽 부아가 나겠는가?”

“의혹은 의혹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수사 발표는 물론 재판 기록에도 여러 가지 허점과 모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안 제기된 숱한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실체, 즉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으로서 KAL기를 폭파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움직일만한 의혹은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사법부가 이미 3심을 통하여 판결했다고 해서가 아니다. 사건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미ㆍ일 정부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이 이 사건을 아웅산 폭파 사건과 더불어 북한이 저지른 대표적인 테러로 단정하고 있으며 아직도 북한은 세계로부터 테러 집단의 낙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이 던진 의문에 대한 답변이 있다. ‘어제와 오늘’ 7월1일, 7월8일 호에 소개된 전 주한 미국대사 제임스ㆍ릴리가 5월4일 낸 ‘차이나 핸드(중국통)’에 이 사건에 대해 5쪽이나 씌어져 있다. 34여년 간을 중국, 북한을 상대한 CIA요원이었던 그가 주한 미 대사로 본 이 사건의 진상은 차분하다.

그는 KAL858기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서울에 부임한 지 1년여 만에 듣자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북한이 이 일을 저질렀다. 사건을 밑바닥까지 훑어 사실을 얻어내고 그들을 파헤치자.”

그는 87년 12월 1일에 잡힌 바레인 정보통으로부터 김현희가 경찰에 잡힌 사실을 들었다. 그는 2001년 3월, 이 책을 쓰기 위해 그때 바레인으로 가서 김현희를 데려온 박길수 외무부 차관보, 당시의 바레인 미대사 데이비드 랜섬 등을 인터뷰했다. 그가 밝힌 내용은 신 국장, 안 변호사의 의문에 대한 객관적인 답이 될 수 있다.

릴리 대사는 적고 있다. “25살의 마유미 하치야라는 여성이 아버지와 함께 바레인을 벗어나려 하다가 가짜 여권임이 드러나 공항에서 잡혔다. 늙은이(폭파 주범 김승일)은 청산가리가 든 담배를 깨물어 그 자리서 죽었다. 바레인 경찰 책임자인 이안 핸더슨(영국 국적)은 젊은 여성이 머뭇거리며 그와 유사한 담배를 입에 가져가자 이를 빼앗았다. 그녀는 담배를 채는 헨더슨의 손을 물어 상처를 냈다”

그녀는 신문자에게 ‘중국에서 태어난 고아로 일본에서 자랐다’고 했다. 폭파와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훈련받은 첩보원임이 금세 드러났다. 과거의 성적관계를 캐묻는 여성 신문관의 코를 한방 먹인 후 핸더슨의 배를 무쇠 같은 주먹으로 쳤다. 이어 그의 권총을 빼앗아 머리에 대고 자폭하려 했다. 핸더슨은 전자총을 쏘아 그녀를 제압했다.”

핸더슨은 회고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분노가 그녀를 서울로 가게 했다. 그는 신문 및 수사관들에게 고함쳤다. ‘저 여자를 밖으로 끌어내. 이제부터는 남한이 그녀를 갖게 된다.’

그때 바레인에는 박수길 차관보가 안기부 岳?3명과 함께 와 있었다. 박 차관보는 바레인 정부측에 경고했다. “그녀를 오래 갖고 있을수록 바레인은 밀려드는 북한지원 세력으로부터 위험에 빠진다.”

바레인 정부는 그녀를 중국으로 보내라는 시리아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중국은 사건 발생 전에 6월께, 미국으로부터 충고를 받았다. “북한의 남한에 대한 어떤 위협도 미국은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현희는 12월 15일 서울로 압송되어 8일만에 “내 이름은 긴, 아니 김현희”라고 밝혔다.

KAL858사건의 유일한 증인인 김현희는 릴리 대사의 ‘차이나 핸드’에 차분히 김정일의 살아 있는 테러리스트로 묘사되어 있다.

입력시간 : 2004-07-2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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