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엽기사회 강타한 진짜엽기


장마의 끝자락, 일요일 편집국. ‘긴급’이란 깃발을 휘날리며 쳐들어 온 기사 한 꼭지가 점심 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부유층ㆍ부녀자 19명 살해…이혼ㆍ신병 등으로 증오심 키워’. 드디어 잡혔다는 것이다.

꼬박 1년을 노심초사해오던 허준영 서울경찰청장이 7월 18일 오전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검거 소식을 알릴 정도였다. 지난해 9월부터 서울 일대를 휘젓고 돌아다니며 무차별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 온 유영철(34). 14일 경찰에 검거됐다가 도주하기까지 한 그는 16일 오전 영등포역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재검거, 잔뜩 독이 오른 경찰 조사 과정에서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자백했다는 것. 단독 살인으로 최다의 기록이다. 그러나 정확한 희생자 숫자가 어디서 그칠 지, 현재로서는 범인 자신만이 아는 상황이다.

수십억대 부자에서 서민까지, 그의 살인 행각은 거침없었다. 윤락 단속 나온 경찰관 행세를 하면서 유흥가를 전전, 출장마사지 여성 등을 유인해 잔혹하게 살해했다. 이밖에 인천 월미도에서 노점상을 살해한 것을 비롯, 부산 등지에서도 추가로 범행한 것으로 경찰 조사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빈한한 결손 가정 출신의 그는 소년원에서 사회를 학습했다. 결혼해 아들까지 두고도 범죄를 밥 먹듯 저지른 그는 수감 중 이혼당한 뒤, 지난해 11월 전화방에서 알게 된 여자에게 청혼도 했다. 그러나 전과자에 이혼남이란 점이 드러나 절교당하고는, 사회에 대한 증오심만 키워 갔다고 경찰은 발표했다. 사체를 15~18 조각으로 잘라 비닐 봉지로 5~10겹씩 싼 뒤 예닐곱 차례 나눠 암매장하는가 하면, ‘증오범죄’임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현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사실 등은 상식을 능멸한다.

태풍 속의 고요 같은 일요일 오후, 오프라인 상의 끔찍한 진실 하나가 그렇게 우리의 일상과 정면 충돌했다. 때맞춰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멀쩡한 인간을 도륙하는 내용의 할리우드 신작 영화가 상상 속만의 일일까. 갈수록 더해가는 빈부 격차의 현실 속에서 혹 그보다 더한 ‘엽기의 씨앗’이 자라지나 않는지?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07-21 13:56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