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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강상중의 '재일(在日)'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8월 19일 상오 “제 선친과 관련된 보도를 접한 후 지금까지의 3일은 제 평생 겪어 보지 못한 가장 무겁고 심각한 고뇌의 시간이었다. 그 동안 저는 제 선친이 일본군에 종사했다는 사실이 늘 마음의 부담으로 있었다”, “제 몸에 붙은 흠결이라면 공인으로서 그 무엇이라도 밝혔겠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아버지의 일이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영원히 묻어 둘 생각은 결코 없었다”며 당의장직을 사퇴했다.

같은 시각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 당은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관시켜 부담을 갖지 말라”며 여당의 친일 규명 확대 움직임에 정면 승부를 걸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서 박 대표는 18일 “과거사 때문에 현재와 미래가 어렵다는 대통령과 여당의 시각에 동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얘기가 나온 마당에 대폭적으로 과거사를 짚어보자”고 마한 바 있다. 친북ㆍ용공 세력도 규명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국대 강정구 교수(‘만경대 김일성 생가’ 발언으로 구속)는 박대표의 정체성(identity)에 칼날을 댔다. “박근혜의 정체성은 유신독재정권의 퍼스트 레이디로 미소 짓는 정체성밖에 없다. 박정희의 정체성은 반민족, 반민주, 반인간적이며 이는 박근혜의 정체성일 수 밖에 없다.”

한편 한동대 법학과의 이국운 교수는 박 대표가 노무현 정부에 물은 ‘정체성’에 대해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정치공학적 분석을 가했다. “정체성이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국가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각자의 정체성에 대한 견해를 먼저 이야기하고 나서 시작되어야 하는데, 박근혜 대표는 먼저 우리의 정체성이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그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 것이죠. 그렇게 해서 정체성의 문제를 ‘당신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는 문제로 바꿔버렸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박 대표가 상당한 정치적 성공을 거뒀다고 봅니다.”

친일, 용공, 친북 규명의 원천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아이덴티티의 규명에서 시작 된 셈이다. 그 해답을 엉뚱한 곳에서 찾아본다.

지난 3월 23일 일본의 출판사 ‘고단사’는 도교대 사회정보연구소 강상중(姜尙中)교수의 ‘ 재일(在日)’을 펴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진행 중일 때 강 교수는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1년에 경상도 창원에서 굶주리다 못해 일하러 온 아버지(15세) 강모씨와,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1941년 18세 나이로 진해에서 사진을 들고 신랑을 찾아 온 어머니 우순남(寓順南)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날 때의 이름은 나가노 데쓰오(永野銕男)였다. 토목 공사 노동자 였던 아버지가 구마모토로 옮겨 고물 수집상을 했던 터라, ‘철(銕)’자에 어머니의 ‘남(男)’자를 딴 것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어머니는 그를 ‘강상중’이라 불렀다. ‘나가노’는 1972년 여름 와세다 대학생 신분으로 아버지의 조국 서울에 와 삼촌인 강모 변호사를 처음으로 만났다.

이에 앞서 삼촌은 1970년 오사카 박람회 때 1945년 해방 후 일본을 다시 찾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1944년에 헌병이 된 그였다. 일본인과 결혼 한 그는 딸을 두었지만 패전국인 일본의 헌병으로 전범 대상이 될 것 같았다. 그는 아내, 젖먹이 딸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들고 해방된 한국을 찾았다. 이후 해군에 들어가 법무참모로 6ㆍ25에 참전한 뒤 변호사가 되었다.

그때 조카는 처음 본 삼촌에게 물어봤다. “삼촌, 왜 헌병 같은 걸 하셨어요?” 그의 답, “부모를 여의고 늙어서 앙상해진 한국인으로 있을 바에야 차라리 일본제국의 영광을 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거든. 그 편이 내게는 행복일 거라고 생각했단다.”

강 교수는 이런 삼촌이 버렸던 ‘조국’의 모습을 2년 후 서울에서 처음으로 보고 그의 회고록, ‘재일(在日)’에서 밝히고 있다. 그의 삼촌은 한국이란 조국을 ‘일본 제국’이란 국체(國體)로 바꾸고 다시 떨어져 나온 귀태(鬼胎ㆍ귀신이 나은 태아 또는 병신 아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직후에 ‘나가노 텐요’에서 강상중으로 외국인 등록을 했다.

그는1909~81년에 독일 슈텐베르그에서 막스 베버와 근대를 연구하고 일본의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는 국체와 민족주의를 오용했다는 요지의 ‘ 내셜널리즘’(2001년출판)을 저술, 재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도쿄대 교수가 됐다. 태어나자마자 ‘재일’의 멍에 썼던 그는 이제 한국, 조선, 일본, 러시아, 중국, 미국과 ‘동북아 공동의 집’을 만들어 함께 세계화해 나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대중은 그를 ‘강사마’라 부른다고 시사주간지 ‘아에라 7월 26일자는 보도했다. ‘사마(漾)’는 “성실하고 사람을 배신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의 온화한 지식인”에 붙여주는 존칭이요 애칭이다.

태어난 일본과 조국 한국으로부터 ‘아웃사이더’로 취급받는 ‘재일 한국 조선 동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덕분일까, 그의 책은 벌써 5쇄에 들어갔다. 54세인 그는 그의 삼촌과 박 대통령에 대해 “한국 역사와 일본 역사의 경계인으로서 일본군이나 본토에서 잊었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귀적(鬼籍)에 스스로 들어간 귀태”라고 결론 내렸다.

신기남 전 의장과 박근혜 대표는 왜 이 책이 쓰여졌는지, 그리고 왜 일본에서 그토록 인기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입력시간 : 2004-08-2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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