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국가보안법이여 안녕


그의 영화도 이제 막을 내리나 보다. 반세기를 넘게 누렸으니 꽤나 오랜 시간이다. 그는 1948년 12월 1일에 태어났다. 이 땅이 해방을 맞은 지 4개월도 안 돼 태어난 조산아다. 그러나 전쟁을 거치고 ‘완장’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철인이 됐다. 감히 누구도 그에게 시비를 걸지 못했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 그 자체였다.

그는 신생아때와 유신시대, 5ㆍ6공 시절 최고의 대우를 받는 터미네이터였다. 그러나 완장이 하나 둘 떠나가고 힘이 떨어지면서 점차 박제가 돼 갔다. 문민ㆍ국민ㆍ참여 정부에서 냉대를 받으며 불안한 명줄을 이어갔다. 급기야 지난 5일 그는 공개적으로 퇴출 명령을 받았다. 그것도 눈치 안보는 싸움꾼인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아이러니칼하게 그는 ‘오늘의 노무현’을 있게 한 장본인이다. 노 대통령은 1980년대 중반 재야 변호사 시절 반미(反美) 자주화를 내건 삼민투 사건을 변론하면서 그와 싸웠다. 그 때는 패했지만 자주 싸우면서 내성이 길러졌고 그에 대한 처절한 기억은 오히려 약이 됐다. 정치권과 법조계가 그의 거취를 놓고 지루한 힘겨루기를 하자 노 대통령은 참지 못하고 체면도 잊은 채 그의 목에 칼을 댔다. 그걸로 그의 50여년 영화도 끝이 났다. 야당이 아우성치고 보수가 목에 힘을 주지만, 그의 운명(殞命)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노 대통령의 말마따나 칼집에 넣어져 역사 박물관에 쳐박힐 상황이다.

그의 환생 가능성은? 승부사 노무현이 밀어 부치는 한 그럴 가능성은 없다. 설령 대수술을 통해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 때는 이미 그가 아니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려는, 그와 함께 누림을 만끽한 이들은 언제든 그를 다시 부르려 할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볼썽사납게 그를 재단한 것은 그럴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래도 그를 진정 떠나 보낸 것은 ‘국민의 힘’이기에, 다시 못 올 그에게 마지막 인사 정도는 남겨도 될 듯 싶다.

국가보안법이여 안녕.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9-09 11:5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