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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접으며] 추석, 그 아날로그적 설레임


지금 우리는 배반의 계절 속을 관통하고 있는 지 모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정치권의 배반을 뜻하는 게 아니다. 문자 그대로다. 누군가의 측면 아니면 배면(背面)을 향해 말을 걸도록 운명 지워져 있는 현대인의 운명 을 말하고 있다. PC 모니터에 고정돼 있기 일쑤인 사무직 노동자들의 일상적 동선.

진의야 어쨌건, 그것은 일단 바로 옆의 사람을 배제하는 바디 랭귀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모바일의 벨소리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양식을 보자. 아무리 급해도 일단은 받고 봐야 한다. 하다 못 해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예를 들어 “지금 회의중입니다”라고 짤막하게 내지르고 나서야 핸드폰에 대한 예를 차렸다고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들은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접속’돼 있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일상은 그러나 동시에 울타리 치기의 연속이다. 최근 가정 폭력이나 스토킹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낯설지 않게 된 ‘접근 금지 명령’은 종래 한국인들의 생활 감정으로는 매우 거북살스러운 것이지만, 점점 일반화돼 가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의 활동 구역에다가는 체액이나 체취 등을 묻혀 나름의 금을 긋고 사는 동물의 습성을 우리가 닮아 가고 있다고 한대도 딱히 할말이 있을까.

문학 평론가. 김동식은 그의 첫 평론집을 ‘냉소와 매혹’이라고 했던가. 공동체적 가치가 붕괴되고 난 뒤, 우리의 버거운 일상을 버텨내게 하는 요체는 사실 그런 것일 지도 모른다. “끈끈한 정 운운”하던 게 언제라고. 한국은 과연 빨라도 너무 빨리 변한다.

그러나 별 도리 없다. 세계적 인터넷 강국, 모바일과 디카, 프래쉬 몹 등은 바로 우리가 좋아서 한 것들의 결과이니. 그러나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 오는 명절, 우리는 다시 연어떼가 된다. 그것은 거의 부조건 반사적 풍경이다. 모두들 자가용을 끌고 나와 기를 쓰고 머리를 들이미는 귀성 전쟁의 풍경은 어디까지가 디지털적이고, 어디부터가 아날로그적일까?

하이퍼 텍스트로부터의 탈각(脫殼)을 위하여. 어설픈 개똥 철학들로부터의 해방을 위하여. 이번 추석 연휴는 그를 위한 아날로그적 경험들이 축적되는 시간이 되길 기원한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09-2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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