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주간한국' 40년 스크랩을 보면서


소설가이자 기자 선배인 양헌석씨가 오랜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오랑캐꽃’을 읽다 새삼 세월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소설 초반에 남로당 간부였던 아버지의 전력이 드러나면서 부산 살던 일가족이 서울로 야반도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광동 판자촌에 막 발을 디딘 아이의 눈에 비친 서울 한강변의 모습. 한남대교가 생기기 전 나룻배가 오가고 겨울 추위에 강물이 얼어붙으면 지프가 얼음 위를 내달렸다는 시절이었다. 역사에 휩쓸린 가족사의 비극도 눈물겨웠지만, 소설에 묘사된 40여 년 전 서울 풍경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던 탓이다.

‘주간한국’이 이번 호로 창간 40주년 기념호를 낸다. 기념 화보를 준비하면서 주간한국 스크랩을 들쳐보다 다시 한번 40년 세월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창간 후 잇달아 ‘매진사례’(이 표현조차도 지금은 얼마나 생경한가!)를 냈을 정도로 국내 최초의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은 당시 식자층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주간한국은 독자와 친근한 여러 기발한 아이디어의 산실이었다. 각계 명사 백인을 모아놓고 ‘애주당(愛酒黨) 전당대회’를 개최했는가 하면, ‘최저대상(最低大賞)’을 제정해 매년 연말 정치ㆍ출판ㆍ영화 등 부문 인사들에게 시상했다. ‘밤 줍기 대회’는 또 어떤가. ‘가을이라네, 밤 주우러 가세’라며 해마다 독자들과 함께 결실의 가을을 즐겼다.

양씨의 소설에 묘사된 40년 전 서울의 모습이나 주간한국 스크랩에 나타난 당시의 사회상은 낭만이라면 낭만적인 시절이기도 하다. 세월은 우리에게 늘 후한 법이니까. 하지만 이후 40년 동안 한국 사회, 그리고 언론의 변화한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개발과 독재, 민주화, IMF경제위기. 그 사이 한강에 다리가 서른 개 가까이 놓여졌지만 지금 우리들의 삶은 나아졌는가, 과연 한국은 지속성장 가능한 사회인가. 최저대상의 여유, 가을 밤 줍기의 인정을 독자에게 주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언론은 온통 자사 이기주의의 아전인수 식, 강퍅한 편가르기식 보도만이 난무하고 있지는 않은가. 40년 시간의 흐름에 누렇게 변색된 주간한국 창간호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하종오 기자


입력시간 : 2004-10-14 16:29


하종오 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