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국민은 피곤하다


‘세상을 보는 창.’ 으레 책과 신문 또는 TV나 라디오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2004년을 사는 우리는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바로, 무한 토론과 의견 교환의 장을 제공하는 인터넷의 ‘인기 검색어’ 혹은 ‘급상승 인기 검색어’리스트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위헌 결정이 내려진 10월 21일 오후.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홈페이지(www.ccourt.go.kr)는 일순간 네티즌들의 설전장으로 변했다. 판결 이후 25일 오전까지 헌재 게시판에 오른 글만 1만1,000여 건에 이르렀고, 이 같은 사회적 민감도를 반영하듯 한 포털 사이트의 지난주 급상승 검색어 순위에는 ‘수도 이전 위헌’이 1위로 올랐다.

우선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 ‘국민을 존중한 명판결’이라는 찬성 의견과 ‘치매 판결’이라는 반대 의견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중간 지대는 찾아 보기 힘들다.

한 쪽에서는 “헌재의 이번 결정은 한 마디로 재앙이다. 헌재는 국회의 법적인 정당성을 말살했을 뿐 아니라 국민 투표를 통해 더 큰 국론 분열을 조장하게 됐다”며 재판관들을 몰아 세운다. 이에 질세라 다른 한쪽에서는 “여론보다는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이라는 점만 강조하는 여당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며 재판관들을 치켜 세웠다.

원래, 패자는 말이 많은 법인가. “600년 역사의 서울이 관습법상 수도라면 1천년 고도인 경주나 만주, 간도도 수도냐. 재판관들을 다시 신림동 고시촌으로 보내라”는 등의 비꼬는 의견과 “‘수도는 곧 서울’이란 명제가 관습상 헌법의 지위를 갖는다면 조선 시대 이전까지 뿌리가 올라가는 ‘성매매’나 ‘호주제’도 관습 헌법이 아니냐”며 ‘ 관습 헌법’이라는 법리를 조롱하는 패러디도 눈길을 끌었다.

중간 지대의 의견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학계서조차도 논란이 되고 있는 ‘관습 헌법’의 잣대로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도, 물릴 수 없는 판결을 두고 ‘납득할 수 없다’며 투덜대는 여당도,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률이 ‘위헌’ 판결을 받았는데도 쌍수를 들고 ‘법치주의의 승리’ 운운하는 한나라당도, 서울 시민만의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승리라며 역겨운 너스레를 떨고 있는 서울시장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이민을 심각히 고려중”이라는 한 네티즌의 말이 맴돈다.

정민승


입력시간 : 2004-10-29 13:36


정민승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