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잡 노마드와 진정한 자유


독일의 미래학자 군둘라 엥리슈는 2002년 국내에 소개된 자신의 저서 ‘잡 노마드 사회’에서 직업의 유목민, 즉 잡 노마드(Job Nomad)가 현대인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정착하고 있음을 주장해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묘사하는 바, 잡 노마드란 한 직장이나 한 업종에 매달려 살지 않을 뿐더러 회사를 위해 목숨 바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대신 그들은 자신의 가치와 노동력을 주체적으로 사용하며 마음 가는 대로, 발 가는 대로 직업을 따라 여기저기 떠돌아 다닌다. 직장과 직업의 속박에서 스스로 벗어난 자유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 법. 그들은 인터넷, IT기기와 함께 지식정보를 이용하는 능력을 유랑의 동력으로 삼는다.

엥리슈가 관찰한 잡 노마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은 이웃이다. 주변을 한 번 살펴 보시라. 한 직장에 평생 버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그보다는 오히려 더 나은 직장과 직업을 꿈꾸며 매 순간 고민하는 부류가 훨씬 많지 않은가.

실제 많은 직장인들이 이직을 당연한 일로 받아 들이고 있음이 여러 조사에서 입증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나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노라”고.

IMF 경제 위기 이후 일상화된 구조조정 탓에 직장인들은 언제 퇴짜를 맞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신세가 됐지만, 한편으론 먼저 선수를 쳐 직장을 퇴짜 놓는 용감한 직장인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까지 금융, 정보통신 등 이직이 활발한 업계에서 주로 볼 수 있지만, 그 숫자나 범위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한 추세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직 바람이 거세다고 해서 ‘나도…’하며 섣부른 편승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잠재적 ‘잡 노마드’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이직은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함과 동시에 장기적인 경력 로드맵을 그린 후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이직으로 인해 값비싼 기회 비용을 치를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충고다.

또 한가지. 이직을 준비하더라도 회사의 친한 동료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철저한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어쩌다 속내가 알려지면 상사 등과 불편한 입장에 놓이는 것은 물론, ‘ 거사’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와 만난 잡 노마드족들도 그래서 익명 속에 숨기를 한사코 청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11-04 15:03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