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인, 영원한 꽃이 되다

[People] 김춘수씨, 향년 82세로 타계
순수의 시인, 영원한 꽃이 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한국의 시에 관계와 존재라는 현대적 존재론을 선구적으로 탐색한 ‘꽃’의 시인 김춘수 씨가 11월 29일 오전 9시께 명을 달리 했다. 향년 82세. 지난 8월 초 식사 도중 기도가 막혀 쓰러져, 와병 한 지 넉 달 만이다.

경남 통영(구 충무) 출신인 김 시인은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유학해 니혼(日本)대학 예술학과 3학년에 재학 중 중퇴했으며, 귀국 후 중ㆍ고교 교사를 거쳐 경북대 교수와 영남대 문리대 학장, 제 11대 국회의원,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시화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에 이어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처용단장’ ‘쉰한 편의 비가’ 등 시선집을 포함해 25권의 시집을 남기며 우리 현대시의 한 획은 그은 인물이다.

이후 1981년부터는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며 자유아세아문학상, 경남ㆍ경북문화상, 예술원상, 대한민국문학상, 은관문화훈장, 인촌상, 대산문학상, 청마문학상 등을 휩쓸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5년 전 부인과 사별한 뒤 큰딸의 아파트 근처에 살며 세상을 등지기 전까지 시작을 계속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에게 은빛 평가만 따른 것은 아니었다. 광주 항쟁 이후 태동한 5공화국 독재 정권 하에서 자신의 지론인 순수시와 무의미 시의 철학과는 정반대로, 당시 민정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그 ‘순수시의 순수성’이 폄훼 받기도 했다. 역사는 미당 서정주의 전두환 찬양 연설과 함께 당시 젊은 문학 지망생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했던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도 그는 한국시의 형식적 새로움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시인으로 남아 있다. 그의 70년 가까운 시작(詩作) 인생은 모더니즘이란 하나의 신념을 일관되게 추구해 온 드문 시인이라는 것이다. 3남2녀의 유족을 남긴 그는 먼저 간 부인이 묻혀 있는 경기 광주 공원묘지에서 영면하고 있다.

정민승 인턴 기자


입력시간 : 2004-12-02 19:01


정민승 인턴 기자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