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이념공방에 포위된 사회


요즘 한국 사회를 들여다 보면 ‘팔꿈치 사회’라는 말이 절로 생각난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파편화된 현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요약한 표현이다. 비좁은 지하철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팔꿈치를 바짝 세우고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풍경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신문 방송 인터넷 할 것 없이 “여론입네” 하는 곳은 온통 진보 - 보수, 좌 - 우 이념 대립으로 도배되다시피 해 고민하는 ‘문제적 지식인’이 설 중간자리는 찾아 보기 힘든다.

정치권이나 이익 단체가 그러는 건 한편 이해되는 구석이 있지만, 언론에다 시민 사회까지 숟가락 얹어 놓고 이념 놀음을 즐기고 싸움을 부추기는 것을 보면 순수한 의미의 이념이 아닌 이권 다툼의 인상 마저 느껴진다. 사회 경제 제도를 선진화하고 민주주의의 심화시키는 사안 조차 이념으로 덧칠 해 편가르기를 조장하고 서로에게 팔꿈치를 세우고 등돌리게 만든다.

이런 와중에 최근 ‘진보, 보수 당신들은 다 틀렸소’라는 부정 어법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마음을 열고 긍정어법으로 실사구시적 대안을 이야기하는 중도(中道)세력의 등장은 어쨌든 반갑다. 이들의 대안이 진보 - 보수, 좌 - 우의 중간쯤의 공간에서 4대 입법 등 정치적 이슈에 또 다른 컬러를 더하는 것 보다, 이데올로기의 틀을 벗고 논의의 앵글을 옮겨 21세기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숙제를 푸는 데 진력하기를 기대한다.

먹고 살기 벅찬 대다수의 생활인들은 보안법, 사학법 등 소위 ‘4대 개혁 입법’을 둘러싼 사생결단식 대결에 일면 고개를 끄떡이다가도 죽기 살기로 공부해 대학을 나와도 취직도 안 되는 세상, 언제 그만 둬야 될 지 모르는 직장 생활 따위를 생각하면 다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 수 밖에 없다. 한국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개혁을 해야 한다는 엄숙한 시대 정신의 논장(論場)에서 지금 국민들의 입에서 쭈뼛쭈뼛 흘러 나오는 소리는 ‘밥은 먹고 합시다’ 이다.

지금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논쟁은 ‘Bread & Butter 문제’, 곧 먹고 사는 문제이다. 대다수 국민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누가 지든 이기든 4대 입법의 대결정국은 빨리 좀 끝내고 정치의 중심이 ‘국민의 밥’으로 돌려지기를 바란다. 지금 정당의 정체성은 이념적 선명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좋은 ‘Bread & Butter 정책’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4-12-08 23:56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