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천사' 익명의 기부자들

[피플]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아름다운 손
'얼굴없는 천사' 익명의 기부자들

익명의 70대 노부부는 “암 조기 진단과 치료에 써 달라”며 50여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은 80억원 상당의 유가증권(삼성전자 주식 2만주)을 서울대 병원에 기부했다. 이들 ‘얼굴 없는 천사 부부’의 선행은 지독한 불경기로 한층 더 움츠러든 우리 사회에 훈훈한 감동을 자아냈다.

이 노부부는 큰 돈을 모았지만 “꼭 필요한 데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평소 검소한 생활을 했다. 수수한 옷차림으로 병원에 나타난 노부부는 그 많은 돈을 기부하면서 당초 자신들의 선행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극구 피했으나, 이런 일은 보도돼야 또 기부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병원측 설득에 익명 보도를 허락했다.

노부부가 서울대 병원에 거액을 기부하게 된 동기는 두 내외가 모두 1996년 이 병원에서 각각 위암과 폐암을 조기에 발견, 성공적인 치료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부부는 자식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정도의 재산만을 제외한 재산 전액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부부와 동행한 40대 전후의 두 아들 중 장남은 “부모님이 평소 ‘자식들에게는 물고기를 잡아 주기보다 잡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이라고 말씀을 많이 하셨다”며 “당신들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흔쾌히 동의한다”고 밝혔다. 재산 문제로 가족간의 불미스러운 일들을 자주 보아 온 한국 사회에서 이들 가족의 아름다운 모습이 더욱 빛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80억원이 넘는 노부부의 기부는 서울대 의대 사상 최고의 기부 액수이다. 이 거액의 주식 기부로 서울대 병원은 올해 말부터 소화기내과(위암)와 흉부외과(폐암)가 각각 주식 배당금 1억원 정도를 받아 연구 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들 노부부 뿐 아니라 최근 연인, 친구끼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웃사랑 나누기 ‘릴레이 기부’도 화제이다. ‘희망 2005 이웃사랑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익명으로 또는 지인의 이름으로 귀한 성금을 내놓고 가는 천사들의 숨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

끝 모를 불황 속에서 고단하고 우울한 2004년 한 해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정치적 이슈때문에 사회가 찢기고 서로 으르릉 댄 대한민국. 우리가 그 어두운 기억을 접고 다시 희망의 새해를 노래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이름을 가린 아름다운 손길 때문이 아닐까.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4-12-22 18:44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