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최소 하루 20장의 원고지, 한 달 6백장 이상의 글을 월간 ‘인물과 사상’과 단행본 ‘인물과 사상’에 쓰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 그는 지난 9월말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 15권을 완간했다. 그 일을 시작한 지 2년만의 일이었다. 1945~1989년까지의 한국사를 페이지마다 최소 2~3개씩의 주석을 달아가며 2만장의 원고를 쏟아낸 것이다.

그는 1부 1940년대(‘8ㆍ15해방에서 6ㆍ25전야까지’) 2권 결론에서 담담히 쓰고 있다. “‘전투적 극단주의’의 유산은 2004년의 한국 사회에도 펄펄 살아있다. 좌우 어느 쪽이건 늘 에너지는 과잉이다. ‘오버’는 기본이요, 필수다. 그래서 재미있고 무한한 가능성도 열려 있긴 하지만, 이젠 ‘중간’으로 가는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이 대목에는 해방 60년이 되는 새해 2005년에 대한 소망과 저문 2004년, 탄핵의 해에 대한 회고가 담겨 있다. 그래도 ‘중간’으로의 꿈을 가지게 된 것을 축하해 주고 싶다.

그가 45년간의 우리 현대사를 산책하며 인식한 것은 다음이었다. “제가 보기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중의 하나는 ‘분열’입니다. 분열은 교과서적으로도 민주주의의 조건이자 과정인데, 독재 정권 치하에선 분열이야말로 민주화의 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분열주의를 옹호하고 있지요. 그런 옹호에 타당한 면도 있겠지만, 저는 한국 사회가 분열에 익숙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이유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 교수가 11월에 ‘현대사’를 완간하며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강 교수는 그 이유를 7가지로 들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미군정까지 70년간 자치를 박탈당한 ‘불행한 역사적 유산’ △중앙의 패권을 차지하는 세력이 모든 것을 다 먹는 ‘초강력 중앙집권제’ △대화와 타협, 논쟁과 토론이 효용을 갖지 못하는 연고와 패거리에 의해 행해지는 ‘초강력 연고주의’ △해방정국의 이념 갈등, 6ㆍ25, 독재 정권으로 만연된 상호 용납하기 어려운 ‘적대 전선의 형성’ △적대 전선의 두 축인 이기주의자, 이타주의자들의 불화합(이기주의자는 승리를 위해 분열주의를 주요 책략으로 삼았고, 이타주의자는 소신 독선 오만으로 화합을 피했다) △이념을 외국에서 수입해 왔기 때문에 여러 세력 사이 상호 접점을 찾기보다는 분열이 증폭되는 경향 △정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영향력 또는 이익이 너무 큰 까닭에 헤게모니 쟁취를 위한 정치 집단의 투쟁이 극렬하며, 결국 분열주의로 빠지게 하는 ‘정치 잉여 가치’의 과잉.

미국 위스콘신대 언론학 박사로 올해 47세인 그는 한달 1백만원이 넘는 책을 사 읽으며 외부와의 단절 속에 인물 찾기에 나선 ‘독립군 지식인’이며 ‘최고의 논객’(정혜신 신경과 여의사의 평)이다. 그는 분열의 한 예를 여러 차례에 걸쳐 ‘현대사’에서 풀어 놓고 있다.

1944년 1월 중국 서주에서 일본 학도병으로 있다, 탈출한 장준하(사상계 발행인)는 6,000리를 걸어 중경의 임시정부에 닿았다. 중경에는 독립 운동 지사가 몇 백 명 밖에 살고 있지 않았는데 우파와 좌파에 따라 거주지가 달랐다. 학병 탈출자가 나타날 때마다 포섭 공작을 벌여 패거리를 만들었다.

장준하는 1백여 명의 환영인사가 모인 자리에서 ‘폭탄’을 던졌다. “가능하다면 이곳을 떠나 다시 일군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번에 일군에 들어간다면 꼭 일군 항공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일군 항공대에 들어간다면 중경 폭격을 자원, 이 임정청사에 폭탄을 투하하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선생님들은 왜놈들한테 받은 서러움을 다 잊으셨단 말씀입니까? 그 설욕의 뜻이 아직 불타고 있다면 어떻게 임정이 이렇게 네당, 내당 하고 서로 겨누고 있을 수 있습니까?”

장준하가 분노했던 ‘분열’과 대립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했다. 1948년 첫 미국 유학생 20명이 미국으로 떠났다. 그 중 한 명이었던 이기홍은 1999년에 낸 회고록(‘경제근대화의 숨은 이야기 : 국가 장기 경제개발 입안자의 회고록’)에서 적고 있다. “나와 같이 1948년 군용선으로 태평양을 건너간 유학생들은 배에 타면서부터 조국을 저주하고 다시는 고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에까지도 한국에 돌아 온 사람은 그 일행 중에서 나 한 사람밖에 없다.”

‘저주하는 조국’을, 강 교수는 10여년 동안 매일 1만여개의 ‘강준만 파일’로 만들어 탐사했다. 또 많은 학술서, 회고록 심지어 유언비어까지 살폈다. 결론은 간단했다. “우리는 아직도 40년대 후반에 구축된 체제의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틀을 움직이는 그 어떤 법칙이 있다면, 그건 바로 ‘중간’을 허용치 않는 ‘전투적 극단주의’라고 하는 행태적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그러나 강 교수는 희망적이다. “역사적 조건화로 인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극단으로 몰고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극단주의는 너무도 뚜렷이 대비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중간은 없다. 흥망(興亡), 양자택일이다.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옮겨가는 속도도 빠르다. 분열하고 증오하는 일도 목숨 걸고 하지만, 공부하고 일하는 데에도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이런 ‘전투적 극단주의’의 긍정적 효용도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보신주의적 처세술로 ‘중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생각과 행태를 달리하면서 각기 전투적 극단주의를 실천하는 두 세력사이의 극렬 대립 구도에서의 중간을 말하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의 ‘현대사’에서는 ‘중간’ 지향의 당위성, 낙관과 희망이 있다. 일독을 권한다.

입력시간 : 2004-12-29 11:0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