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것


1983년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전투기에 의해 사할린 인근 밤바다에 떨어졌다. 탑승객, 승무원 모두가 북극해의 바다 밑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사건을 두고 한국인은 물론 미국인 절대 다수도 소련의 만행이라고 봤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 나라 언론들이 기장의 실수도 있지만 소련의 만행이 결정적이라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얼마 뒤 이란 민간 항공기가 기장 실수로 미국 영공을 침범, 미군기에 의해 격추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사건과는 달리 많은 미국인들은 격추 책임이 항공기 기장에게 있다고 봤다. 왜냐하면 미국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 언론이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이것을 언론의 프레이밍 효과 (framing effect), 우리말로 틀짓기 효과라고 한다. 한마디로 언론이 어떤 사안에 대해 틀을 지어 대중의 인식을 지배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언론의 이같은 강력한 효과를 일컬어 탄환과 같다고 했다. 쏘기만 하면 가슴 깊숙이 박히는 큐피트의 화살처럼 인간의 가슴에 꽉 박힌다는 얘기다.

이제 매스컴은 단순히 사실의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세상에 대한 그림을 제공하고 친절하게도 (?) 설명까지 해 줄 뿐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밀양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보라. 매스컴은 수백명의 시민을 촛불을 들고 차가운 겨울 날씨 속에 서울의 광화문, 부산의 서면거리로 뛰쳐 나오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스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스스로 도태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제공하는 미디어에 의해 지배받을 지도 모른다.

매스컴의 위력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정확하게 보는 힘을 키워야 한다. 세상을 보는 정확한 힘은 언론을 보는 힘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신문과 방송은 그리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언론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마찬가지. NBC, CBS 방송의 경우를 보자. 세계적 기업 GE가 아무리 워싱턴의 포토맥 강에 방사능이 함유된 물질을 방류하더라도 NBC는 애써 모른 체하고, 디즈니 월드에서 사자에게 아이가 물려 크게 다치더라도 CBS는 아예 묵살해 버린다. GE는 NBC의, 디즈니는 CBS의 모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학자 알철은 ‘언론은 파이퍼를 부는 사람이고 이 사람에게 노래를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은 돈을 대는 사람’이라고 비꼰 적이 있다. 과거 언론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몸부림쳐 왔지만 지금은 소유주나 광고를 주는 재벌기업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애교를 떨어야 하게 됐다는 얘기다. 그래서 매스컴의 이면을 보는 지혜가 더욱 필요한 시대가 됐다.

애리조나 출신의 미국 상원의원 존 매케인은 지난 11월 대선에서 패배한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막판까지 부통령 후보로 구애했던 유명 정치인이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그는 2000년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일대 돌풍을 일으키다 지금의 부시대통령에게 석패했다. 매케인은 월남전 당시 해군장교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5년 반 동안 돼지우리 감옥에서 지냈다. 그의 할아버지가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이었다는 사실을 의식한 월맹군이 석방을 권했으나 거부하고 그대로 남아 종전 후 국민적 영웅으로 귀국했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5년 넘게 돼지우리 감옥에서 가장 그리워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예상을 뒤엎었다. 5년 넘게 감옥에서 가장 그리워한 것은 가족도, 여자친구도, 맛난 음식도 아니고 <검열하거나 왜곡되지 않은 자유롭고 정직한 뉴스>라고 답했다. 자유로우면서 왜곡되지 않은 정직한 언론이 가장 그리웠다는 매케인의 고백을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칼럼 <매스컴과 현대사회>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 매체경영학 박사


입력시간 : 2004-12-29 11:11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 매체경영학 박사 yule21@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