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퀴노네스 박사의 ‘북한 이해하기’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는 확실히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한반도 전문가다. 그의 새해 소망대로 한미 관계가 전개되길 바란다.

퀴노네스 박사는 1월 3일자 한국일보 한반도 전문가 신년 기고에서 바랐다. “한미 동맹의 운명은 한국의 번성하는 민주주의 및 북한과의 화해 정책에 미국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맞추어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평화와 안정은 여전히 한미동맹의 최우선 목표이다. 그러나 양국은 현재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북한의 무장해체를 최우선 과제로 놓고 일방적 무장해제를 강요하는 방법으로 다자적 압력을 선호한다. 서울은 동의하지 않는다. 외교적ㆍ경제적 개입을 통해 북한과 화해를 추구한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 및 민주적으로 선출된 한국의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정책에 대해 존중과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한국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심각한 분열을 봉합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는 부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등장 후 북한에 대한 한미 대통령들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인식을 잘 요약했다. 퀴노네스 박사의 이런 요약은 어찌하여 가능했을까.

1992년 12월 19일 토요일. 김영삼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날, 미국이 북한과 한국전쟁에서 정정한 지 39년이 되던 해. 퀴노네스가 61년 서울에 어학병으로 보안부대원으로 근무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지 31년째. 그는 미국 국무부 관용여권을 가진 최초의 고위관리로 평양 순안 공항 입국 심사대에 섰다.

심사원은 군복 비슷한 제복을 입고 약간 높은 단상위에 앉아 있었다. 심사원은 다짜고짜 퉁명스런 ‘한국말’로 물었다. “당신은 미국 외교관입니까?” – “네” 퀴노네스는 공손하게 ‘한국말’로 대답했다.

“어떻게 조선말을 합니까?” 심사원은 계속 무뚝뚝하게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한국말’을 배웠소.” – “한국은 없소, 그건 미제의 꼭두각시 정권일 뿐이오. 당신은 처음으로 진짜 한국인 조선에 입국하는 것이오. 우리 나라의 남반부 남조선은 아직도 미제군에 점령되어 있소.”

퀴노네스는 이때 의원신분으로는 최초로 방북한 보브 스미스 상원의원의 통역 및 수행원자격이었다. 스미스는 ‘미국 포로’와 ‘실종자’문제, 미군 유해 발굴을 위한 협상차 방북한 것이었다.

그 후 퀴노네스는 1997년 국무부를 떠날 때까지 북한을 13차례 오가며 통산 7개월을 북한에서 보냈다. ‘조선말’ 아닌 ‘한국말’을 하면서였다. 그가 당시 5일간 평양에 머물면서 느꼈던 것은 “김일성 광장, 김일성 동상이 우뚝 선 평양은 그 뒤에 가려진 진짜 북한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 후 1년도 되지 않아 퀴노네스는 1993년 10월 23일 핵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진 북ㆍ미 관계를 해결하겠다며 평양을 찾은 게리 얘커만 하원 의원의 국무부 수행원으로 김일성 주석과 오찬을 가졌다. 김일성은 “한 사람 한 사람과 힘찬 악수를 했다. 김 주석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눈빛이 반짝였다. 나는 ‘한국말’로 인사했는데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김 주석 뒤에서 통역이 큰 소리로 통역하는 것이 보였다. 그의 귀가 어둡다는 말을 아무도 해 주지 않았다.”

면담이 1시간 동안 진행되어 끝날 무렵 퀴노네스는 김 주석에세 고함을 지르듯 ‘한국말’로 외쳤다. “각하, 제가 갖고 있는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사본에 서명해 주시겠습니까!”김일성은 그를 향해 돌아 섰다. “당신 ‘한국말’ 했소?” 그는 배석한 강석주 외무성 제 1부상의 설명을 듣고 말했다. “원하는대로 서명해 드리지요”라며 식당으로 향했다. 김 주석은 ‘10대 강령’을 보좌관의 도움을 받으면서 서명했다. [퀴노네스 박사가 2000년에 쓴 ‘한반도 운명’(원제:‘북한의 핵위협-오프 더 레코드의 메모장’)에서]

퀴노네스가 그 때 느낀 수령 김일성에 대한 인상은 “그가 현실로부터 고립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한편 그의 현실 해석과 다른 사람들의 동기에 대한 평가는 확실히 이데올로기적이었다. 그는 대단한 민족주의자로 보였다. 조선은 모든 것을 우선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동시에 김일성은 자기 중심적이었다. 주한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해야만 비로소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퀴노네스 박사는 2004년 2?‘북한 이해하기’라는 417쪽짜리 책을 냈다. 이 책에 대해 93~97년까지 주한 대사를 지낸 제임스 레니는 평했다. “하버드대 동아시아 역사박사인 퀴노네스가 쓴 이 책에는 북한의 어제, 오늘, 내일이 사실에 입각해 씌어 있다. 신이 보낸 선물이다.” 퀴노네스는 이 책에서 20여 편의 개인 회고를 적어 놓았다. 그가 1996년 10월 미군 유해 확인을 위해 휴전 43년 만에 8명의 미군 시체 확인반을 끌고 갔을 때다.

북한은 이들을 마야 문명의 피라미드 같은 단군릉으로 데려갔다. 이들은 관속에 들어 있는 단군의 머리 두개골을 보여주었다. 그 중 한 사병 신원확인 요원이 화들짝 놀라며 상급장교에게 부르짓 듯 말했다. “장교님! 저 뼈들은 5,000년 이상 짜리가 아닙니다.” 그는 상급자의 대답이 없자 다시 반복했다. “장교님! 절대 저 뼈는…” 그 때 상급 장교는 그에게 말했다. “이봐! 그건 정치 문제야! 더 이상 떠들지 마.”

퀴노네스 박사가 ‘한국말’을 하며 그 동안의 북한을 돌아본 결론은 하나다. “북한에서 신화나 역사는 정치적인 문제며 역사적 인식, 사실(史實)이 아니다”는 것이다.

부시 미 대통령은 2기 취임에 앞서 퀴노네스 박사와 북ㆍ미, 한ㆍ미 관계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면 한다.

입력시간 : 2005-01-1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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