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21세기의 키워드


일제 지배에 이은 분단의 여파로 100년에 이르는 민족적 수난을 경험한 우리는 ‘민족’이란 이름 앞에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민족 통일이란 명제 앞에 ‘왜?’라는 의문 부호를 붙이는 것조차 불경스럽다. 통일은 민족 앞에 빚을 갚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일이다.

또한 대다수의 한국인이 꿈꾸는 통일 한국은 수난의 상징인 변두리 역사를 접고, 동북아 새로운 중심국이 되는 것일 터이다. ‘동아시아 중심국’은 민족의 오랜 염원이고, 그것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는 민족을 앞 세운 애국주의일 것이라는 점을 우리 국민들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나 독일 통일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 본 권용혁 교수(울산대 철학과ㆍ동아시아 연구센터 소장)는 ‘민족’ 앞에 부동 자세를 취하는 통일은 위험하다고 단호하게 경고한다. 그의 주장은 비판적 사유를 얼어붙게 한 ‘민족이란 이름’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권 교수는 2년째 동북아 3국간 가족ㆍ기업ㆍ시민 사회의 비교 연구를 주도하며 21세기 한국의 새 지평을 모색하는데 천착했다. 그는 혈연, 언어, 문화의 단일성만 강조한 민족은 구시대적 패권주의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 단정한다. 21세기의 키워드는 수평적 소통과 평화이지, 힘이 지배하는 닫힌 세계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21세기 한국은 일종의 역사 보상 심리로 ‘동북아 중심국가’를 주창할 게 아니라, 평화를 먹고 사는 약자(주변부)의 논리로 ‘동북아 교량 국가’를 추구할 것을 주문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패권을 추구해 본들 승산도 없다. 또한 남아시아 쓰나미 피해로 각국이 경쟁적인 ‘구호 외교’를 펼치고 있는 데서 보듯, 21세기의 지구촌을 지배할 보편성(logic)은 힘이 아닌 평화의 소통력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도덕성을 선점하려는 강국들의 ‘구호 외교’는 미래 선진 한국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통일 한국을 주도할 이데올로기는 ‘닫힌 우리’를 등에 업은 ‘민족 애국주의’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를 뿌리를 둔 ‘헌법 애국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권 교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21세기 국가 전략은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로서 발돋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강조다. 한국이 상호 소통의 다리가 되자는 것, 그것은 결국 동북아 3국이 함께 윈 - 윈 하는 길을 앞당기는 평화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1-13 11:16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