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나의 사랑과 슬픔, 삼성


언론학의 여러 이론 중에 정치경제학적 연구라는 게 있다. 아담 스미스나 리카르도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인 기반이 시작됐으나 훗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비판적으로 재해석된 것으로, 좌파 이론의 핵심적인 영역이다. 언론을 정치경제적인 시각으로 바라 본 이 이론의 요체는 누가 소유하며, 어떻게 통제되며, 뉴스는 어떻게 결정되고, 광고주와는 어떤 관계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노조에 가입한 직원을 회유하여 노조에서 탈퇴시키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했다는 뉴스가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 소식을 비중있게 실었다. 초일류 기업인 삼성이 노조를 없애기 위해 벌인 해프닝이어서 똑 떨어지는 뉴스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거대 신문 일부에 이 뉴스는 실리지 않았다.

삼성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뉴스가 된다며 온갖 자질구레한 일까지 보도해 온 관례에 비춰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광고를 의식한 것으로 짐작된다. 재미있는 것은 삼성에서 주는 광고를 외면하기 어려운,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마이너 언론들을 그나마 한 줄 기사로 다루며 독자들에게 행간의 이해를 구했지만, 부자 신문들은 오히려 외면했다. 딱 떨어지는 정치경제적인 사례다.

삼성이 정말 잘 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순이익만 무려 100억 달러를 내는 바람에 일본 열도가 왈칵 뒤집어졌다는 소식이 톱기사로 등장하고 있다. 삼성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우스개소리까지 들린다. 그 뿐인가. 많은 언론이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동물적인 경영 감각’이라며 찬양하고 사설로, 컬럼으로 연일 도배한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낯 뜨거울 정도의 '삼성 용비어천가'가 한국인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다. 모두가 “삼성 최고”를 외쳐댄다.

삼성이 정말 세계최고 기업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아직은 좀 곤란하다. 삼성의 무노조 원칙은 유명하다. 노조 설립을 우려해 동창회도, 향우회도 금지하고 있는 기업이 삼성이다. 한 번 뒤집어 놓고 생각해보자. 합법적인 노조 설립을 막는 기업이 정말 세계 일류회사가 될 수 있을까. 언론에 공익 광고비를 대고, 쓰나미에 허덕이는 남아시아에다 엄청난 구호금을 안기고, 세계 최고의 제품을 개발해 내고 있지만 노조 설립을 두려워해 직원들의 시시콜콜한 모임까지 간섭하려 드는 대단한 회사일지언정 진짜 일류 회사는 아닐 게다.

필자가 유학 시절 보고 겪은 삼성은 한국인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미국 플로리다의 케이프 커네버럴에 가 보라. 우주선을 구성하는 많은 부품이 전시돼 있다. 우주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모두가 중요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전자 레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들 한다. 모든 음식물을 레인지로 요리해 먹기 때문이다. 이게 고장나면 우주 탐사고 뭐고 말짱 “꽝”이 아닌가. 자세히 한 번 보시라. 우주선에 부착된 레인지가 바로 삼성 제품이다. 필자는 당시 여섯 살 난 딸 아이에게 설명을 해 주면서 삼성에 대한 무한한 긍지를 느꼈다. 그 뿐인가. NBC 투데이 쇼에 등장하는 마이클 존슨의 휴대폰 광고는 현지 교포들에게 자부심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말이다. 제품만 세계 최고를 만든다고 해서 저절로 세계 최고 기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줬으면 좋겠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노조에 대한 적대감은 미국 책자에 “ I will have earth cover my eyes before a union is permitted at Samsung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 된다)” 라고 소개돼 있다. 그 뿐인가. 저명 대학 교수인 저자는 비록 이회장이 작고한 지 오래 됐지만 그의 노조 불가 방침만은 아직도 세계 기업에서 최고의 반열에 남아 있다고 비꼬고 있다 (his anti-unionism lives on).

그래도 필자에게 삼성은 여전히 사랑으로 남아 있다. 겉만 일류가 아닌 진짜 일류로 변해 세계를 호령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필자는 지금도 행복하다.

김동률 연세대 매체경영학 박사


입력시간 : 2005-01-26 10:43


김동률 연세대 매체경영학 박사 yule21@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