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법원의 시계는 거꾸로 가는가


“미국이 세계 최강 대국인 이유는 가장 잘 살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자유롭기 때문이다.” 영화 ‘아마데우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등으로 유명한 체코 출신의 감독 밀로스 포먼이 한 말이다. 1990년대말 포먼이 포르노 잡지 허슬러의 발행인인 래리 플린트를 다룬 영화 ‘래리 플린트’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 소감으로 한 이 말은 정작 수상 영화보다 더 유명해졌다.

표현의 자유를 들먹일 때 곧잘 등장하는 영화가 바로 래리 플린트 (1996) 다. 포먼 감독에 올리버 스톤이 제작한 이 영화는 래리 플린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래리 플린트는 자신이 경영하던 스트립 바의 고객을 끌기 위해 뉴스레터를 발간하다가 누드 사진에 어울리지도 않는 난해한 글을 싣는 ‘플레이보이’의 이중성을 공격하며 자신은 노골적인 포르노 잡지를 만들어 낸다. 결국 외설죄와 명예 훼손죄로 기소된다. 그러나 그는 미국 수정헌법 1조에 의해 승리한다. 수정헌법 1조는 “연방의회는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이 법원으로부터 다큐멘터리 장면의 일부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조작하거나 재연한 장면이 아닌 다큐멘터리 장면은 삭제하라는 판결이다. 법원은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역사와 혼동될 수 있다며 다큐 장면을 문제 삼았다. 우리나라 헌법 역시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 도덕이나 사회 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를 침해’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삭제 장면은 소송 당사자, 즉 정희 전 대통령의 유족이 직접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법원이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점이다. 소송 당사자가 문제 삼지 않은 장면을 법원 스스로가 문제 삼아 삭제를 결정한 것은 이해가 힘든 대목이다. 우리나라 법원의 시계는 가끔씩 거꾸로 가기도 하는가 보다.

물론 우리와 지구의 반 바퀴쯤 멀리 떨어진 나라와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나라다. 그러나 래리 플린트가 포르노 대부이면서도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설사 포르노라 하더라도 인간의 표현의 자유는 인정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는 노암 촘스키의 절대주의 자유 이론과도 부합되는 것으로 어떤 가치나 전제보다 우선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말이다. 영화 제작진도 알아야 될 것이 있다. 영화 마니아조차도 ‘표현에는 무제한적인 자유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은 반드시 그들, 옹호하는 자들만의 세계는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재판에 이기고 당당하게 법정을 나서던 래리 플린트에게 쏟아진 것은 박수가 아니라, 그를 평생 휠체어를 타게 한 총알 세례와 거대한 야유였다.

플린트는 보수 기독교 우익단체와 미 정부의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한 사주라고 주장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자신의 상술에 교묘하게 이용한 그에 대한 분노쯤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보통 사람 대 래리 플린트(the People vs. Larry Flint)’ 가 아니던가. 표현의 자유를 자신의 상술에 이용하려는 영화 제작자들이 이 땅에도 있다면, 그들에게 총알을 퍼붓고 싶은 성난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매체경영학


입력시간 : 2005-02-17 13:21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매체경영학 yule21@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