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샤란스키의 '민주주의 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월 21일 평양을 찾은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장관이 상원 외교 청문회에서 북한을 ‘압제 국가’의 하나로 지목한 사실을 들어, “어쩌겠다는 건 지 명백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라이스 백악관 보좌관은 당시(1월 9일) 부시 대통령이 2003년 11월 ‘민주주의를 위한 기부금 재단’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언급했던 바 ‘압제의 전초 기지’(outposts of oppression)란 표현을 격상시켜 ‘폭정의 전초 기지’(outposts of tyranny)라고 했다. 북한이 쿠바, 미얀마, 짐바브웨, 이란, 벨루루시 등의 국가와 함께 ‘전초 기지’국가에 포함 됐다.

부시 대통령이 쓴 ‘압제’란 표현을 김 위원장이 왜 라이스 국무장관의 ‘폭정’대신 썼을까. 명백한 설명은 없다. 부시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기에는 “할 말을 꾹 참고 있는” 그에게 겁이 나서 일까. 라이스 장관이 만만해서 일까? 이런 의문에 해답이 될 지 모르겠다.

재선이 이루어진 작년 11월 17일 라이스 보좌관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해외 이주담당 장관인 나탄 샤란스키를 백악관으로 초청, 부시 대통령과 면담을 주선했다. “나는 당신이 쓴 ‘민주주의론’를 읽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이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지요. 내 직능은 대통령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러시아가 민주정부가 되기 전 소비예트 시절 9년간 KGB 감옥에서 지낸 ‘반체제자’(dissident)인 샤란스키는 책의 공저자인 론 더머(예루살렘포스트의 컬럼니스트)와 함께 1시간 여 동안 부시 대통령과 면담했다. 부시의 말은 보도 관제에 걸렸지만 샤란스키가 말한 것은 통과했다.

그는 대통령에 말했다. “정치가와 반체제자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정치가는 언론과 여론을 보고 타협 합니다. 그러나 반체제자는 사상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속에는 불타는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들의 확신을 위해서는 어떤 결과가 닥치더라도 맞섭니다. (중략) 당신이 중동에서의 ‘자유의 확산’을 말할 때 누구도 적합 하다고 했지만 당신은 이를 주장했습니다. ‘자유 사회’와 ‘자유 투표’의 중요성을 계속 주장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누리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계속 설명했습니다. 또 평화와 안보의 길은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자유 세계의 지도자들에게는 ‘반체제자’입니다.”

샤란스키는 작년 9월 30일에 ‘민주주의 - 폭정과 테러를 극복키 위한 자유의 힘’을 미국에서 펴냈다. 이 책에는 1948년 생인 유태계 러시아인인 그가 반체제자가 된 이유, 왜 자유와 민주주의가 모든 국가 국민에게 필요 한 것인가의 주장이 담겨 있다. 그는 소비에트 반체제인 우두머리인 사하로프 박사와 1964년에 “소비에트는 1984년에 무너질까”을 집필했던 안드레이 아말리크의 영어 통역자 이며 대변자였다.

레이건이 고르바초프를 처음 만난 1985년 말, 제네바에서 머물던 호텔 앞에서 남편의 석방을 요구 하는 그의 아내 아피탈을 본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에게 말했다. “당신은 샤란스키가 미국 간첩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의 아내의 말을 믿는다. 당신이 그를 계속 가두고 정치범들을 감옥에 넣는다면 미소 간 신뢰 구축은 계속 될 수 없다.” 고르바초프는 86년 2월, 반역죄로 사형을 받은 그를 구금 9년만에 석방 했고 그는 이스라엘로 가 소비에트에 있는 1백여만명의 유태인을 이스라엘로 데려 갔다.

1964년 아말리크가 소비에트는 20세기 후반에 사라 질것을 예견 한 것을 고르바초프가 1990년에도 예측 못한 데 대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본다. ‘자유에의 갈망’, ‘자유의 위대한 힘’, ‘자유라는 것은 신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안이한 개방과 개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말리크의 말을 계속 인용했다. “항상 총을 적을 향해 겨누고 있는 병사들은 모른다. 오래 조준 하다 보면 팔에 힘이 빠져 총이 내려가게 된다. 그때 적은 달아 난다.” 스탈린 이래 미국을 앞지르겠다며 벌인 체제 경쟁은 기술 생산력을 떨어뜨린데다, 자유에 대한 인간 본래의 갈망 때문에 자연스레 반체제자를 길러내 결국 붕괴 했다고 본다.

그가 지적한 바, 소비에트가 느린 속도로 붕괴한 원인은 세 가지다. 인민들은 소련 체제 내에서도 자유를 갈망 했고, 소련 체제 밖 지도자들은 이들 인민이 끝내는 해방되리라 믿었다. 특히 자유 세계가 소련과 연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시켜 온 것은 소련 인민들에게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샤란스키는 그런 면에서 세습적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에도 ‘자유를 향한 인민들의 갈망’은 있을 것이며, 이에 주목해 자유 세계가 소련에 대했던 정책을 쓰면 해방 될 것으로 봤다. 그의 책에는 북한에 대한 별도의 항목을 두지 않았지만 북한을 염두에 둔 대목이 분명 있다.

부시 대통령은 샤란스키가 ‘자유의 확대’, ‘폭정의 종식’, ‘세계의 민주주의화’ 등의 원칙에서 뜻을 함께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의중을 가장 잘 이해 했다며 백악관 참모들에게 이 책 읽기를 권했다. 이 책에 자신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요약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샤란스키가 그의 책에서 쓴 이런 대목을 보았을까. 폭정 아래에 있는 사람은 이중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예로 북한에서 온 1970년대 편지를 예시한 부분이다. “나는 알게 되었다. 마음속의 말을 하면 나는 죽는다는 것이다. 뭔가 말하고 싶으면 눈으로 말해야 한다. 나는 입술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눈으로 말하는 법을 배웠다.”

샤란스키는 북한을 “세속적인 전체주의 국가”, “덜 고립된 사회에 비해 월등히 인민 세뇌를 하고 있는 나라”, “6.25가 난 지 50년이 지났지만 ‘외부의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인민들에게 강권을 휘두르는 나라”로 보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는 6월 한국어판 ‘민주주의론’의 발간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위해 오늘 샤란스키를 평양으로 초대해 담소를 가졌으면 한다.

“왜 내가 폭정을 자행하는 자이고 압제자인가”라고 부시나 라이스 대신 그에게 물어 봤으면 한다.

입력시간 : 2005-03-0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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