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언론의 기능과 영향력


록 이나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블루 그래스나 컨츄리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덜 정치적이거나 민주당에 가깝다. 블루 그래스나 컨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공화당에 가깝다. 미국 얘기다.

좋아하는 음악과 지지하는 정당이 무슨 관계가 있어 이 같은 황당한 소리가 다 나올까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겠다. 하지만 많은 관련 연구들이 증명하고 있고 지금도 유효하다. 록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대도시에 살며 개방적이고 교육 수준이 높고, 블루 그래스나 컨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남부의 낙후된 시골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이처럼 정치와는 무관한 다양한 사회 행위들을 통해 특정인의 정치적인 성향을 알 수도 있고, 또 역으로 이같은 행위들은 정치적인 성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정치와는 관계없는 수 많은 매스컴의 컨텐츠들이 부수적인 학습 효과를 통해 인간의 정치 사회화에 나름대로 영향을 미친다. 일부 학자들은 이 같은 부수적인 간접적인 설득이 더 큰 정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포레스트 검프’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본 미국인은 더욱 미국적이게 되고,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를 본 사람은 더욱 나치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오늘날 드라마, 영화 등 모든 매스컴이 정치 지식의 주된 정보원으로 자릴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의 개발 도상국은 예외겠지만, 요즘은 부모가 담당했던 정치 사회화 과정을 매스컴이 맡고 있다. 예전에는 박정희가 어떻고, 이승만이가 어떻고를 부모로부터 들었지만, 이제는 어릴 때는 텔레비젼, 커가면서는 신문을 통해 정치 지식을 습득한다. 그래서 매스컴을 제 2의 부모라고 한다.

정치사회화의 가장 중요한 매체는 신문과 텔레비젼이다. 나이가 들수록, 학력 수준이 높을수록 TV 보다는 신문의 역할이 커진다. TV 는 특히 도시 하류 계층, 시골로 갈수록 정치 사회화에 큰 역할을 한다.

매스컴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크고도 무섭다. 보통 사람이 정치 현안을 평가하는 방향은 불행하게도 매스컴이 평가하는 방향과 대부분 일치한다. 이게 문제다. 매스컴이 좋게 말하면 좋은 것으로 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나쁜 줄 안다. 물론 지식이나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매스컴이 중요하다고 계속 떠들면 정말 중요한 줄로 알게 된다.

게다가 매스컴은 선거운동 등 실제적인 정치 행위에 대해서도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매스컴을 통해 얻은 정보를 두고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경우도 있고, 매스컴을 많이 접하는 사람일수록 주변의 친구나 동료들과 정치 토론 등 정치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나아가 실제로 선거운동에까지 참가하는 경우가 있다. 노사모나 박사모가 대표적인 예다.

매스컴의 위력은 날이 갈수록 더 하고 있고 한국 언론사들의 정치적인 색채도 더욱 뚜렷해지면서 차별화되고 있다. 조ㆍ중ㆍ동과 한ㆍ경ㆍ서란 일반론은 이제 ‘살구빛 조선일보’라 불리는 문화일보를 새로 끼워 넣고 중앙일보는 제외, 조ㆍ동ㆍ문과 한ㆍ경ㆍ서로 새로 고쳐져야 될 시점에까지 왔다.

그렇지만 선진국 언론과는 달리, 한국 언론사의 정치성, 당파성은 그렇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은밀하고 교활하다. 그래서 나타난 현상만으로 언론의 정치성, 당파성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언론사 스스로도 모두가 중도라고 주장하며 어느쪽에 치우친다는 지적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는 얘기다.

언론의 정치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베일에 가려진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언론의 소유 관계, 정치 권력과의 관계, 언론의 소비와 생산에 게재되는 여러 요인들 등등을 알아야 매체의 색깔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짧은 한국의 역사를 보더라도 언론은, 경우에 따라서는 정의롭지 않은 권력의 지배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일정 부분 작용해 왔다. 그래서 시장 지배적인 대중 언론에 대해서는 늘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고도 또 필요하다. 그것은 방송이던 신문이던 마찬가지다.

연세대 언론연구소 김동률박사


입력시간 : 2005-03-16 17:18


연세대 언론연구소 김동률박사 yule21@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