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식의 "민족 빼고 감정 빼고"

[한·일 관계사 새로보기] 동해호(東海湖)
황영식의 "민족 빼고 감정 빼고"

연재를 시작하며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은 ‘한일 우정의 해’가 이상하다. 독도 문제와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로 우정의 해는커녕 갈등의 해가 되고 있다. 어떤 미래지향 약속도 단숨에 물거품을 되는 현실은 두 나라에 있어서 역사는 늘 현재의 문제임을 일깨운다. 흔히 말하는 ‘특수한 역사’ 때문이다. 그런데 두 나라는 정말 특수한 역사를 가진 것일까.

사람과 문물의 활발한 교류는 갈등과 대립을 부르게 마련이다. 좁은 바다를 마주한 채 끊임없이 사람과 문물이 오간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갈등은 세계사의 보편적 현상의 하나다.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교류와 갈등을 한꺼번에 보지 않고 갈등에 눈길을 빼앗길 때 바로 ‘특수한 역사’가 태어난다.

한편으로 역사는 언제나 현재의 관점에서 덧칠된다. 역사 서술 때마다 행해진 수많은 덧칠은 더러 밑그림을 아예 가려버린다. 덧칠 가운데 가장 색깔이 짙은 것이 민족의식이다. 민족의식은 태생적으로 외부와의 화해보다는 대결을 먹고 자란다. 한쪽의 민족의식이 다른 쪽의 민족의식을 자극, 강화하는 ‘적대적 공생’의 악순환은 한일 두 지역에도 예외가 아니다. 문화교류를 논할 때조차 우위나 주도권에 집착한다. 정도의 차이일 뿐 양쪽 다 기본 구도와 본질은 다르지 않다.

대립과 갈등에 힘을 빼앗길 게 아니라 진정으로 미래의 화해와 협력을 바란다면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민족의식의 덧칠을 역사에서 벗기려는 노력에 나서야 한다. 그 결과 하늘에서 내려본 듯한 밑그림을 복원할 수 있다면, 그것을 양쪽 역사서술의 공통분모로 삼아야 한다. 해묵은 믿음이 깨지는 심리적 고통을 무릅쓰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덧칠을 벗기고 싶다.

1. 동해호(東海湖)
MBC가 15일 북한 개마고원 지역의 자연생태계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처음 보는 개마고원의 풍광도 그렇지만 이미 남한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희귀동물들의 모습이 여간 반갑지 않다. 방영에 앞서 표범과 불곰, 스라소니와 늑대 등이 신문에 미리 소개됐다.

한반도 거의 전역을 불태운 동족상잔의 전쟁만 아니었어도, 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철조망과 지뢰밭만 아니었어도, 무분별한 개발에 의한 서식지 파괴만 아니었어도 남한에서도 깊은 산속에서는 볼 수 있었을 동물들이다. 전쟁 통에 사람과 함께 많은 동물이 죽어야 했고, 살아남아도 백두대간을 타고 남북을 오르내릴 수 없었다. 더러 남한 지역에 살아남은 놈들도 서식환경의 악화로 이내 대가 끊겼다.

개마고원의 희귀동물 가운데 개인적으로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은 불곰이다. 몇 년 전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내륙 도로를 따라 여행하다가 작은 개울가에서 어슬렁거리는 불곰을 보았던 기억 때문이다. 동물원 철창 속에서가 아닌 자연속의 불곰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차에서 보았는데도 등줄기가 서늘했다. 반달가슴곰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일본에는 반달가슴곰이 흔하다. 겨울잠을 준비하는 가을철이면 먹이를 찾아 농가에까지 내려와 부엌을 뒤지기도 하고,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홍시를 따먹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곰은 홋카이도에만 살고 있는 반면, 반달가슴곰을 홋카이도에서 볼 수는 없다. 둘 다 혼슈(本州) 북단 아오모리(靑森)현과 홋카이도 사이에 가로놓인 쓰가루(津軽)해협을 건너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달가슴곰은 한반도를 거쳐 남쪽에서 일본 열도에 들어갔고, 불곰은 시베리아에서 사할린을 거쳐 홋카이도에 들어갔다. 언뜻 생각하면 남쪽의 대한해협과 오츠크해를 넘어 간 반달가슴곰과 불곰이 좁은 쓰가루 해협을 건너지 못했다는 얘기는 이상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동북아지도를 보면 한반도는 중국 대륙 북동쪽에서 남으로 길게 뻗어 있고, 일본 열도는 북동쪽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며 동해를 감싼 듯한 모양이다. 그러나 약 1만7,000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열도는 지금처럼 뚝뚝 끊어져 있지도 않았고, 대륙에서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약 200만년 전 신생대 제4기 홍적세(洪績世)가 시작된 이래 지구에는 주기적으로 한랭기와 온난기가 교차했고, 약 100만년 전부터는 네 차례의 빙기(氷期)와 그 사이의 따뜻한 시기인 간빙기(間氷期)가 있었다. 빙기에는 고위도 지역은 물론 저위도 지역의 높은 산에도 두터?빙하가 쌓여 해수면이 낮아졌고, 간빙기에는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졌다. 마지막 제4빙기(뷔름빙기; 약 5만3,000~1만년 전) 절정기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120~130㎙ 정도 낮았다.

이 정도로 해수면이 낮아졌다면 현재 수심 200㎙ 이하의 대륙붕이 대부분인 동지나해의 상당 부분이 육지였고, 황해는 존재할 수 없었거나 일부만 얕은 연못처럼 돼 있었을 것이다. 또 현재의 대륙붕 분포로 보아 일본은 가는 띠의 형태로라도 남으로는 한반도, 북으로는 시베리아와 연결될 수 있었다. 동해가 오늘날의 사해와 같은 내륙의 해수호였을 것임도 물론이다.

지구 기온이 따스해져 빙하가 녹기 시작하자 일본을 대륙과 연결한 ‘육교’ 가운데 시베리아와 사할린 사이, 대한해협과 쓰가루 해협에 물이 들어왔다. 약 1만2,000년 전에는 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가 끊어졌고, 이어 혼슈와 규슈(九州) 시코쿠(四國)가 바다로 분리됐다.

따라서 대한해협이 형성되기 전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반달가슴곰이 아오모리현 북쪽에, 시베리아에서 건너 간 불곰이 홋카이도 남쪽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쓰가루 해협에 물이 차 있었던 셈이다. 혹한을 용케도 견딜 수 있게 진화한 일본원숭이가 일본 열도를 북상해 가다가 끝내 홋카이도에 건너가지 못한 것도 쓰가루 해협 때문이다. 바닷가에서는 해초와 어패류를 채취해 먹고, 고구마를 씻어 먹는 지혜를 무리에 전파하는 일본원숭이의 적응력으로 보아 고위도에 따른 추위가 걸림돌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일본 열도가 한반도나 시베리아와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은 지질학적 증거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거쳐 간 나우만코끼리의 화석이 홋카이도 남부에서까지 발견되는 등 생물학적 증거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동물의 이런 이동 경로를 따라 뛰어난 사냥꾼이었던 인간도 동북아 대륙과 한반도, 일본 열도를 큰 어려움 없이 오갔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현재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는 어떤 사이일까.

황영식 논설위원


입력시간 : 2005-03-17 14:13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