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들 분통터져 죽겠단다. 일본은 생떼 거두고 사죄하거라"

[피플] 독도, 세상을 향해 일갈
"한국민들 분통터져 죽겠단다. 일본은 생떼 거두고 사죄하거라"

대나무 한 그루 안 가지고 있는 나를 ‘죽도(竹島)’라고 부르는 너희들은 누구더냐. 허락도 없이 나를 씨마네에 전입시킨 너희들은 누구더냐. 백주대낮 망발이다. 어처구니 없는 요즘이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주간한국의 지면을 빌어 한마디 하고자 한다.

나는 한국 최동단에 있는 섬이다.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37번지. 과거 삼봉도(三峰島)ㆍ우산도(于山島)ㆍ가지도(可支島)라고도 불렸으나, 1881년(고종18년)부터 독도(獨島)로 개칭됐다. 육지로부터 워낙 멀리 떨어진 탓에 제대로 된 나무 한 그루 없어 돌섬, 독섬으로 불렸다. 이후 조선 사람들이 터럭하나 없는 내 머리를 보고, 대머리 독(禿)자를 써서 독도(禿島)라고 부르긴 했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망망대해서 독공(獨工)하는 내 이미지를 살리자 하여 홀로 독자를 빌어 와 독도(獨島)로 부르게 된 것이니라.

나의 옥체는 동도(東島)와 서도(西島)를 주도(主島)로 하고 가제바위 등 모두 36개의 암도(巖島)와 암초로 구성돼 있다. 내 몸 동쪽은 6만 4,800㎡, 최고 높이 99.4m의 섬으로 꼭대기의 비교적 평탄한 부분에는 등대ㆍ경비초소 등이 설치되어 있다. 서쪽 몸은 면적 9만 5400㎡에다 높이 174m로 가장 크고 높은 섬이나, 산정이 뾰족하고 사면 경사가 급하여 장비 없이는 나를 오를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보고는 외롭지 않느냐, 걱정해 주는 사람들 있으나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 때 조선의 어부 안용복이 나와 함께 살았고, 1953년엔 한국의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1965년엔 최종덕이 이 몸과 30년을 살았다. 그 딸 가족도 예서 살았다. 또 육지(한국)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리던 1986년에는 조준기 일가(3명)가 살았고, 1991년엔 선장 김성도 - 김신열 부부가 입도해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다.

생떼 거두고, 무릎 굻어 사죄하거라. 한국민들 분통터져 죽겠단다. 사시사철 날아드는 갈매기 친구들이 웃는다. 아, 꽃피는 춘삼월 24일부터는 일반 한국인들로 날 보러 온다고 알려 왔구나. ‘독도는 억조창생 때부터 한반도땅임을 증명하러 나간 / 맨 앞의 사람이다 / 영원불멸 맨 앞 사람이다.( 조정권 시인이 4월 2~5일 동료 시인 10명과 함께 내 품에 와서 읊을 시 ‘이제 독도를 섬이라 부르지 마라’ 중에서)’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3-23 20:13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