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정보는 없고 첩보만 판치는 사회


고삐 풀린 ‘카더라’ 정보지에 정부가 정색을 하고 메스를 들이대기에 이르렀다. 담화문에서 밝혔듯 “속칭 ‘찌라시’로도 통하는 주간 형태의 사설 정보지가 터무니 없는 얘기들로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훼손함은 물론,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국가 신인도까지 떨어뜨리는 진원지”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찌라시’ 생산에 관여하는 정보맨들은 “공식 언론이 당장 다룰 수 없는 내용을 1차적으로 유통시킴으로써 첩보 수준의 이야기들을 정보로 만들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며 볼멘소리다. 결국 ‘찌라시’가 정보의 흐름과 공유에 나름대로 일조를 한다는 주장이다. 한술 더 떠, 이번 단속이 권력 핵심 인사의 속을 헤집는 불경죄 때문이라며 ‘찌라시 정보맨’ 다운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찌라시’를 찾는 사람들의 태도에 있다. 그것이 고급 정보라고 믿고, 사실 여부를 떠나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이야기 하는 것을 일종의 특권으로 여기는 것이다. 어느 대기업 CEO는 CEO끼리 골프모임에서 미처 보지 못한 ‘찌라시 첩보’ 탓에 대화에서 소외되는 수모(?)를 겪은 뒤, 부하 직원에게 ‘찌라시’를 잘 챙길 것을 채근했다고 한다. 또 정부의 한 인사는 상관으로부터 갑자기 자신이 접하지 못한 ‘찌라시’ 정보를 듣고 묻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한 적이 있어 평소에 정보지를 샅샅이 훑는다고 토로했다.

사실 ‘찌라시 첩보’는 정보와 분명히 구별된다. 첩보란 대개 정보와 달리, 앞뒤 정황과 논리가 없고 사실성이 결여된 법이다. 그 파급력은 내용이 황당할수록 폭발적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 ‘찌라시 첩보’에 기댄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에 근거해 현실을 보지 않고, 매사 음모론적으로 접근하게 될 것이다. 그 같은 풍토가 확산된다면 결국은 사회적 상식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구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 사회를 보자. 격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소위 ‘찌라시’로 대변되는 ‘황색 저널리즘’의 범람으로 홍역을 치르지 않았던가.

한국 사회에서 아직까지 공식적인 언론의 통로만으로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는 세간의 인심이 엄존하고, 그것이 ‘찌라시’의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다는 현실은 안타깝다. 싱크 탱크가 발달한 선진국에는 찌라시 공해가 없다. 대신 주요 현안에 대한 정교한 분석을 담은 정보 요약서가 매일 아침 정부 고위층이나 CEO들의 책상 위에 올라 온다.

기관의 장급 인사가 은밀히 배달되는 ‘찌라시’를 보고 따끈한 정보라며 손뼉을 쳐 대는 코미디는 오늘도 어디선가 리바이벌되고 있을 터이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3-23 20:54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