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XYZ 이론


경영학 이론에 ‘X, Y, Z 이론’이라는 게 있다. ‘X, Y 이론’은 맥그러거라는 학자가, ‘Z 이론’은 오우치라는 일본계 미국 학자가 개발한 이론이다. ‘X 이론’이란 한마디로 물리적인 위협이나 징계, 해고 등 다양한 처벌 조항을 가지고 조직 구성원을 관리하는 이론이고, 대조적인 ‘Y 이론’은 일본식 경영에 뿌리를 둔 것으로 종업원 개개인의 재능을 살펴주고 적합한 자리에 배치하며 그들의 노력에 대해 충분히 보상해 주자는 경영 이론이다. ‘Z 이론’은 X,Y 이론을 절충한 형태다.

X 이론은 미대륙 횡단철도 건설 당시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적용됐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록키 산맥을 뚫는 것은 어렵고도 위험한 일이어서 미국인들이 외면하자, 철도 회사는 수만 명의 중국인 노동자를 동원해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하위 개체로 취급, 게으름을 피우거나 현장을 이탈하면 채찍을 휘두르는 등 즉각적인 처벌을 가했다. 여차하면 자르고 교체됐다. 그래서 “침목에 박힌 못 하나에 쿠리, 즉 중국인 노동자 목숨 하나”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왔다. 수만 명이 피를 흘린 댓가로 훗날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 타운이라는 제한된 자치 구역을 넘겨 받기는 했지만 중국인으로서는 떠올리기 싫은 비극의 역사였다.

이 같은 무지막지한 경영 이론인 X 이론은 지난 수년 동안 방송 경영에서는 가장 적합한 모델로 인정받아 왔다. 방송이라는 창조적인 기업에 X 이론이 환영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은 신속하고 즉각적인 경영 결정이 요구된다. 종업원의 능력이나 잠재성을 기대하기 보다는 당장 현실적인 송출이 중요하다. 이른바 시간의 압박 (the pressure of time) 이 절대적이며 즉각적인 결정 (time - pressured decision) 이 늘 요구된다. 지난 일요일 지진 사태를 보라. 뒤늦은 방송으로 공식 재난 방송사인 KBS 는 엄청난 욕을 먹었다. 그래서 “방송 산업은 여전히 두려움(징계에 대한) 이 가장 최선의 방책 혹은 동기가 된다”란 말이 나온다.

Y 이론은 X 이론에 반발해 나왔다. 종업원들의 개인적인 능력을 중시하면서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이론이다. 이런 류의 경영 방침은 지금도 창조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환영 받고 있다. 방송의 경우 실무자와 경영자가 자유롭게 얘기하며 조직을 꾸려가는 형태다. 심지어 과거 미 ABC 사장인 엘튼 룰은 실무자들과 마리화나를 같이 피우면서 프로그램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마리화나가 프로그램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 하에 이뤄진 재미난 사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간 압박으로 인해 오늘날 방송경영에서 Y 이론을 적용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그래서 환영받는 모델이 ‘Z 모델’이다. 이는 한마디로 X 모델과 Y 모델의 장점만 뽑아 만든 것이다. 경영자와 종업원이 서로 평등하다는 평등주의에 기본을 두고 종업원과 경영자가 함께 보조를 맞춘다는 이론이다. 종업원도 일정부분 회사 경영에 참가하고 회사 경영자는 종업원의 요구에 부응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주요 정책결정, 장기 투자 등등은 경영자의 몫이다. Z 모델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영자와 종업원간의 인간관계가 중요하고 조직을 아우르는 회사 철학이 필요하다. 경영의 모든 단계는 CEO부터 말단 사원까지 공유한다. 이른바 유리알 경영, 투명경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체 조직원에게 경영 정보가 공개되고 공유되지 않으면 Z 모델은 실패한다. 적절한 동기부여, 인센티브 등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4대 방송사중 KBS 만 빼고 MBC, SBS, EBS 사장이 새로 선임됐다. 3 명의 신임 사장은 저마다 거창한 경영 계획을 내놓았다. 야심에 찬 세 분의 신임 사장이 X, Y, Z 이론 중 어느 이론에 기반을 두고 거대 방송사를 꾸려갈 지 궁금하기만 하다.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 매체경영학 박사


입력시간 : 2005-03-28 16:55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 매체경영학 박사 yule21@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