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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와카미야의 몽상


와카미야 요시부미(菪官啓文) 아사히 신문 논설 주간은 올해 57세. 아사히에 입사한 지 35년이 됐다.

와카미야 주간은 매달 마지막 주말에 칼럼을 쓴다. 한일간 격랑이 피크였던 3월 27일에 그는 “죽도와 독도를 ‘우정도’라 하자…의 몽상(夢想)”이란 칼럼을 썼다.

그의 몽상, ‘꿈 같은 생각’을 요약하면 그 꿈은 허망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꿈은 새로운 생각이 발상 이라면 한일간의 격랑을 잠재우기 위한 소망(所望)이다. 그의 몽상은 실현성이 있는 그의 한국과의 인연(1981~82, 연세대 어학연수. 2003년 9월~2004년7월까지 권오기 전 동아일보 주필과 대담 형식으로 엮은 ‘한국과 일본국’ 출간)속에 피어난 소원(所願)이다.

와카미야 주간은 그의 소원을 몽상이라 빗댔지만 그건 실현성이 높은 것이라고 느껴진다. 그의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 한국에 대해 ‘엄격한 자세’를 지닌 YS정부 때 통일부총리 였던 권오기 동아일보 주필을 책을 만들게 끌어낸 열의는 그걸 실감 시켜준다.

또한 그가 93년 젊은 나이에 아사히의 논설위원이 되었을 때 쓴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몽상’한 사설(1995년 6월22일자). 이 사설은 그의 바람과 꿈이 실현될 수 있는 실적임을 실감을 넘어 실증시켜 주는 것이다. 아사히 신문에 그가 사설을 통해 쓴 사설은 물론 논설위원들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지만 집필자인 그의 발상, 소망이 담겨 있다.

이번 ‘몽상’은 그의 기명 칼럼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러나 그의 ‘몽상’은 1995년 6월 이후 3월 27일자 칼럼까지의 긴 그의 바람, 소원을 떨친 것이다. 그는 칼럼 에서 썼다.

“다케시마를 일한 양국의 공동 관리로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한국이 응해 줄 것이라곤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한 걸음 나아가 섬을 양보해 버리면 어떨까 하고 꿈같은 생각(夢想)을 한다. 그 대신 한국은 이 같은 영단을 높이 평가하고 섬을 ‘우정의 섬’으로 부른다. 한국은 주변 어업권을 미래에도 계속 일본에 인정한다고 약속하고 다른 영토 문제(중국, 러시아)에서는 일본을 전면 지지한다.”

“섬을 포기하자고 말하니 ‘국적(國賊)이란 비판이 눈앞에 떠오른다. 하지만 아무리 위세 등등해도 전쟁을 할 수 없고 섬을 돌려 받으리란 가능성도 없다”고 한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이 이어 진다. “곧 ‘합방(1910년) 100주년’을 맞는다. 여기서 깜짝 놀랄만한 도량을 보여 손해를 봄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정책은 없는 것일까. 아니 (일본은)그런 묘책을 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이것은 몽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과연 몽상에 그칠까.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

1995년 6월22일에 아사히 신문이 사설에 “’맑은 뒤 가끔 흐림‘이 바람직하다. 전후 50년 내일을 추구하며”의 전면 단독 사설을 썼을 때다. 누구도 이 사설이 한일간에 21세기 초반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제안의 첫 사설이라 느끼지 않았다.

와카미야. 그 때의 2년차 논설 위원 이었던 그는 논제 및 필자 선정에서 공동 개최는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면서 이미 공동 개최가 결정 된것 아니냐는 다른 위원들의 의구를 떨쳐 냈다. 한일 협정 체결 30주년, 전후 50년을 맞은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가 반일(反日)에서 ‘우정’으로 향해 가야 한다는 수면 아래 소망과 소원이 있었다.

와카미야 논설위원은 한국에서 반체제자로 쫓겨 일본에 온 어쩔 수 없이 ‘반일’주의자가 된 소설가 한수산의 광복후 50년, 한일 협정후 30년은 ‘맑은후 흐림’의 개인사를 역사 쓰듯 ‘실현될 수 있을까’하는 소망으로 썼다. 사설 마지막 부근에서야 공동 개최의 속뜻이 드러났다.

“(한씨는) 과거에만 잡혀 있지 말고, 서로 변화와 차이를 인정해 주고, ‘맑고 가끔 흐림’정도의 관계를 만들고자 했다. 전형적인 반일 세대였던 한수산 씨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되돌아 보면 비바람만 두드러졌던 일한관계도 이제는 ‘흐리고 가끔 맑음’ 정도까지는 와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맑게 개인 공간을 넓혀 나가야 할 때다. 한신대지진 피해지에서 일본인과 재일한국 조선인, 아시아 유학생이 서로 자연스럽게 돕는 모습이 태어난 것도 수확이다.”

“지금 2002년 월드컵 개최로 서로 경쟁하고 있지만, 한층 공동 개최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 경기장을 일한 도시에 분산 시키고 결승전은 뽑기로 결정한다. 일국 개최를 의무화한 연맹 규약 개정 등 장애는 많지만 실현된다면 획기적인 기념비가 된다.”

이 사설의 집필자였던 와카미야 논설위원의 소원은 짧다. “단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반 사람들의 만남이다. 한 씨를 변화시킨 것은 국가의 힘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일한협정 조인은 내일로 30년. 조약으로 채우지 못한 도량을 메워가는 것은 일한 양국의 ‘한씨’가 아닐까”로 끝났다.

새 세기 2002년 월드컵은 두 나라에서 ‘맑게’열렸다. 그 후 2~3년 또다시 ‘흐림’이 올조짐이 있을 때 그는 ‘한국과 일본국’을 펴내며 ‘맑음’을 바랬다. 그리고 3월 18일 서울의 출판 기념회에 이어 중앙일보와 “한일 갈등 깊어지면 동아시아 질서 위태”라는 제하의 긴 인터뷰를 가???3월 21일자) .

와카미야 논설 주간은 ‘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꿈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은 그와 만나 인터뷰나 대담을 가졌으면 한다. 그건 노 대통령의 마음을 일본인들에게 전하는 첩경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5-04-04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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