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완행열차의 추억과 라디오의 운명


요즘 젊은이들은 기억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지만 '비둘기호'라는 열차가 있었다. 역이란 역은 모두 멈추어 서는 완행열차다. 속도가 매우 느려 간혹 날쌘 청년들은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 내리거나 올라타는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이 열차는 더 고급인 통일호나 새마을호를 만나면 그 열차가 지나갈 때까지 역에 멈춰 서서 한없이 기다려야 했다.

싼 운임 내고 탄 설움을 톡톡히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느리고 허름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 열차가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비둘기호에는 인근 도시에 있는 학교로 통학하던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있었고, 삶은 달걀과 푸성귀를 담은 광주리를 안고 아들 네나 딸 집으로 가던 어머니의 설레는 얼굴이 있었고, 5일장에 내다 팔 물건들을 담은 봇짐을 들고 새벽 첫 차를 탄 장꾼들이 있었다. 그렇게 비둘기호의 주인은 서민이었다.

그러던 비둘기호가 어느날 슬그머니 모습을 감췄다. ‘운행할수록 적자만 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른바 경영논리에 의한 강제 퇴출이다. 비둘기호를 없애고 철도공사의 재정이 얼마나 튼튼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둘기호를 이용하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통일호나 새마을호를 타야 했다. 세월은 흘러 이제는 새마을호보다 훨씬 빠른 KTX가 나타났다. 통일호나 새마을호를 타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서울과 부산을 3시간 만에 주파하는 KTX를 이용한다.

그러나 모두가 새마을호나 KTX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기름과 찹쌀이 가득한 보자기를 든 할머니나 남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장터에 나가야 하는 괴나리 봇짐장수들은 비싼 요금을 감당할 수 없다. 깨끗하고 쾌적한 새마을호와 KTX가 오히려 서민들의 발을 묶어 버렸다. 기술의 발전과 경영논리가 서민들을 소외시킨 것이다.

라디오는 흔하디 흔한 매체다. 자동차를 사면 그냥 거기에 붙어 나오고, CDP를 사면 원하지 않더라도 라디오는 거저 딸려 나온다. 어느 누구도 라디오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따로 사지는 않지만 라디오는 우리 주위에 늘 함께 있다. 가장 보편적 매체다. 그리고 동시에 서민들을 위한 매체다. 남대문시장의 포목점 가게에서, 미싱이 돌아가는 청계천 공장에서, 모두가 잠든 아파트를 지키는 경비실에서, 인터넷에 익숙치 않은 노인들 옆에서, 첨단기계를 구입하기 어려운 장애인들 옆에서 라디오는 아직도 가장 사랑 받는 매체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열차가 비둘기호에서 통일호와 새마을호, 그리고 KTX로 발전했듯이 라디오도 MP3와 인터넷으로 진화하더니 마침내 DMB로 나아갔다. 그 와중에서 원래는 라디오를 디지털화하기 위해 준비하던 주파수마저 DMB에게 빼앗겨버려 라디오는 언제 디지털의 옷을 입게 될지 알 수가 없게 됐다.

책임 부서인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는 ‘나 몰라라’ 한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자동차에 거저 부착돼 나오던 라디오를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수많은 오디오 채널을 가진 DMB가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라디오는 들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고, 그래서 청취자로부터 멀어지면 광고도 자연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아날로그로 남아 있는 한 피하기 어려운 운명이다.

만일 그렇게 라디오가 사라진다면 라디오를 사랑하던 서민들은 무엇을 듣게 될까.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한다는 라디오 프로그램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 소개되는 그 많은 서민들의 사연은 앞으로도 계속될까. 진짜 서민들이 매달 상당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고 단말기 비용도 만만치 않은 DMB폰을 구입할 것 같지는 않다. 비둘기호에서 강제로 밀려났듯이 이 땅의 진짜 서민들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때문에 그들과 동고동락해 온 매체마저 빼앗기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이것이 라디오를 경영 또는 산업논리 만으로 대해서는 안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라디오는 일종의 공공재인 셈이다.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 매체경영학 박사


입력시간 : 2005-05-03 20:04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 매체경영학 박사 yule21@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