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칼럼] 학교 촌지 없애려면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은 선생님의 노고와 은덕을 가슴에 새기고, 감사함을 표시하기 위해 1964년 처음 제정되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1973년 국민교육헌장 선포일인 12월 5일로 통합, 폐지되었다가 1982년 다시 채택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스승의 날에는(근래 들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의 표시로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거나 조그마한 선물을 전한다. 불우한 퇴직 은사와 와병 중인 교사를 방문해 위로하기도 한다. 정부에서는 매년 교육 발전에 공이 큰 교원들을 선정해 훈ㆍ포장 및 대통령 표창을 수여한다.

그러나 올해는 어느 해보다 씁쓸한 스승의 날이 될 것 같다. 바로 촌지문제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시교육청은 213개 초ㆍ중ㆍ고교를 대상으로 촌지 수수ㆍ찬조금 모금 실태를 감찰한 결과 10개 초등학교에서 5만3,000원~30만원의 촌지를 수수한 교사 12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급기야 부패방지위원회(부방위)까지 나서 스승의 날을 전후로 촌지수수 행위 합동 실태조사를 벌이고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전체 교사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긴 하지만 선생님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촌지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래 전부터 학교 생활의 관행으로 굳어져 왔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연례 행사처럼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이 전개되지만 국민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개선되지는 않고 있다. 그만큼 뿌리가 깊다는 얘기다.

촌지를 없애는 방법은 단순하게 보면 딱 두 가지다.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처럼 학부모가 안 주거나 교사가 안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특히 모든 학부모들이 촌지를 제공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학부모들의 유달리 강한 교육열 때문이다. 촌지를 주어서라도 다른 아이보다 선생님의 관심과 보살핌을 더 많이 받게 해야겠다거나, 혹시 촌지를 안 주면 우리 아이가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학부모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런 상황이니 촌지를 갖다 주는 학부모가 한 두 명이라도 안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촌지 문제를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선생님들이 안 받는 것이다. 아무리 촌지를 디밀어도 교사가 끝까지 거절하면 학부모는 두 손 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게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모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돈봉투를 가져 오지 말 것을 자주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학기초나 스승의 날 등 주요 시기는 물론 매주 한 번 이상 꾸준히 주지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사정상 불가피하게 촌지를 받게 되었을 경우도 즉시 되돌려 주는 것을 지속적으로 실행하면 촌지 관행은 어렵지 않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교장의 역할도 중요하다. 촌지 관행 근절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갖고 이에 소극적인 교사들을 강력히 이끌고 가야 한다. 그 동안 어쩔 수 없이 돈봉투 관행에 젖어 왔더라도 이제부터 과감히 떨쳐 버리고 이의 척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설 때다.

정부의 단속과 제도 개선만으로 촌지 문화를 없애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교육 현장의 가장 핵심적인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하여야만 가능하다. 물론 돈으로 내 자식만을 잘 되게 하겠다는 학부모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함은 당연하다.

어느 포털 사이트에는 이런 질문이 떠 있다. “촌지를 어떻게 돌려주면 될까요.” 한 양심적인 교사의 고민이 묻어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답변 중의 하나는 “당신도 선생님이기 전에 학부모임을 생각하세요”다. 가슴에 와 닿는 얘기다. 내년부턴 가르치는 보람과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진정으로 어우러지는 스승의 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입력시간 : 2005-05-12 14:28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yb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