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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마틴의 꿈과 힐의 마음


북핵 관련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이 3일간의 서울 방문을 마치고 5월 16일 떠나는 모습은 밝지 않았다.

13일 그가 한국 측 수석대표며 폴란드에서 함께 대사를 지낸 송민순 차관보와 미국에서 동행해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오른쪽 겨드랑이에 두툼한 붉은 책을 끼고 있었다.

뉴스위크,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방콕의 아시아 타임스에 ‘평양 워처’를 썼던 브래들리 마틴(현 루이지애나 언론학부 교수)이 쓴 ‘친애하는 어버이 수령아래-북한과 김 씨 왕조’(2004년 10월15일 나옴)였다. 이 책은 마틴 아시아 전문기자가 1979년4월, 미 탁구선수단을 따라 평양을 방문한 이래 네 차례의 북한 취재경험을 총 정리한 깨알같이 작은 활자로 쓴 880쪽이나 되는 책이다.

‘어제와 오늘’ 칼럼 2004년 12월 23일자에 ‘마틴의 두 백일몽’으로 소개되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같은 해에 태어난 마틴은 60년대 평화봉사단원으로 방콕에서 영어선생을 했으며 그 후 여러 신문의 특파원으로 방콕을 거점으로 일했다.

25년여 북한과의 접촉에서 그는 이데올로기를 넘어 세습왕조화 되어가는 김일성 왕조의 실상을 세세히 살폈다. 그의 관찰에 확신을 준 것은 1990-91년 풀 프라이트 장학생으로 서울에 와 만난 탈북자들의 증언이 자신이 매일 접하는 미 국무부 발행 북한방송 듣기 1일 청취록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서울이나 도쿄, 세계각지에서 생겨나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남 등 김 씨 왕조에 대한 루머, 뉴스를 파기 시작했고 그 책의 집대성이 ‘친애하는 어버이 수령 아래’였다.

그는 책을 끝내며 두 가지 백일몽을 꾼다. 그 꿈은 그가 30여년을 살펴본 김 위원장이 ‘악의 축’의 ‘독재자’, ‘폭군’이기보다 김일성의 손자, 손녀 때 까지 한반도에 김 씨 왕조가 남기를 바란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꿈 꿔 보는 것이다.

마틴은 2004년 7월께 책을 마무리하며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분석과는 달리 북한과 미국, 김 위원장과 재선에 나선 부시 대통령이 서로를 ‘악마’, ‘악의 축’이라고 비방하기 전에 평화적 해결책을 찾아보라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두 번째 꿈은 ‘망난이 같은 김정남 대신, 김영숙(김정일의 전처)의 딸인 설송(1974년생 김일성대 정치경제과 출신)을 후계자로 선정해 보라는 것이다.

마틴은 북ㆍ미 화해를 위해 부시 대통령이 아버지 부시나 또 다른 인사를 평양에 보내 화해를 찾는 것에 대한 꿈을 꿨다.

<이 특사가 “미국 대통령이 북한인민의 해방자가 아니라 김 위원장이 해방자이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김 위원장은 공안담당 비서를 불러 즉석에서 명령한다. “모든 지방담당 비서에게 오늘 밤 안으로 모여 정치범 수용소를 정상적인 마을로 바꾸는 방안을 만들라고 하라. 내가 후회하게 될지 몰라도 1개월 내에 수용소 철망을 걷어 내겠다.”>

마틴은 이 꿈을 지난 2월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힐 차관보에게 설명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두 번째 꿈은 고영희(세번째 부인)의 아들(정철, 정운)과 성혜림(첫번째 부인 2002년4월 사망)의 아들 정남(1971년생)보다 전처의 딸 설송을 후계로 삼아 군부 독재국가의 이미지와 테러리스트국가, 위협국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마틴은 그가 김 위원장에게서 후계문제와 관련한 자문 요청을 받았다는 꿈을 꾼다. <“위원장님! 김정운(고영희의 둘째 아들)이 좀 거칠다는 소문입니다. 사담 후세인의 거친 두 아들 우다이, 퀘세이의 오늘날의 운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현대의 독재적이 아닌 왕조국가는 인민의 복지를 지향합니다. 거친 후계자는 안됩니다. 타이 국민들은 부미 폴 왕의 공주 수린손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비록 그의 큰오빠가 공식 승계자이지만 말입니다. 아직도 후계자를 공식화 하지 않은 위원장께서는 인민들에게 인상이 깊은 설송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경제에도 밝고 부드러우며 인민들의 마음에도 들어 좋은 왕가를 이루지 않을까요.”>

마틴의 두 백일몽은 황당무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틴의 백일몽은 880쪽 짜리 두툼한 책에서 그린 김일성 왕조 속의 인민들의 생각, 생활에 적확하다. 이런 적확함 속에 김 위원장을 끌어내어 대미 화해와 대내 개혁을 꾀하려는 것이 마틴의 꿈이다.

꿈을 가지지 않는 지도자는 개혁을 이룰 수 없다. 힐 차관보가 마틴을 만나보고 읽었던 책을 서울에 가져온 이유는 무얼까.

힐 차관보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남ㆍ북 당국자 회의가 진행 중인 16일 외교부를 방문한 그는 “좋은 신호라고 보느냐”라는 질문에 “나는 신호를 기摸??찻잎을 읽는데 지쳤다”라고 답했다.

차를 마시고 남은 찻잎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서양점술의 하나다. 힐 차관보가 지켜본 남ㆍ북 당국자회담에서는 ‘마틴의 두 백일몽’의 빛을 찾을 수 없기에 한 소리였을 것이다. 북한의 김 위원장은 미국의 인권, 핵 폐기 요구를 수용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특히 서울을 떠나며 뉴욕타임스 오니시 노리미츠 특파원에게 어정쩡한 표정으로 말했다. “북한을 뺀 5개국은 평화적 해결을 원한다. 서로 깊은 의견충돌은 없다.” 그는 “내가 미래를 바라보는 한국인이라면 스스로 ‘멀리 있는 강대국과 특별한 관계를 갖기를 원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당국자 회담에 매달린 한국 측은 미국이 김 위원장의 체면을 살려주며 대화를 하고픈 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서울 측이 동맹국임에도 ‘너무 멀리한 것’이 아쉬웠을지 모른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5-05-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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