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패자부활제는 진정한 승자가 되기를


“2004년 한 해 동안 ‘기술’ 자(字)가 붙은 정부 기관과 국회 위원회 등은 아마 모조리 훑고 다녔을 겁니다. 벤처 부활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설득하려고 그야말로 몸부림을 친 거죠.”(벤처기업협회 오완진 부장)

벤처 업계는 지금 시험지를 받아 들었다. 과목은 ‘패자부활제’다. 그것도 자신이 원해서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 치르는 시험이다. 지난 번 시험 때는 딱히 열심히 했다고 하기는 뭐한데도 벼락 점수를 받았었다. 실력 이상으로 점수가 나오자 자신뿐 아니라 선생도, 부모도 모두 흥분했다. 집단 흥분 상태였다. 제법 큰 돈을 들여 시끌벅적한 잔치도 벌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스란히 속살을 드러낸 건 진짜 실력과 탕진된 통장, 그리고 무너진 신뢰뿐이었다.

4년 만의 시험이다. 재수치고는 오랜 기간 내공을 기른 셈이다. 그 동안 빈털터리의 설움과 사기꾼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와신상담했다. 벼락 점수를 노리기에는 시험도 어려워졌다. 실력으로 진검 승부를 걸어야 할 시점이다.

다행히 주변의 시선은 한 번 지켜보자는 쪽인 것 같다. 뭔가 그럴 듯한 결과를 기대하는 듯도 하다. 지난해 이헌재 당시 부총리는 “조선시대 보부상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보부상이 문제를 일으키면 내부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도록 했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이유 때문이다”라며 벤처 업계에 결자해지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한다. 일부 우려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패자부활제의 1차 도덕성 평가 임무를 벤처기업협회가 맡은 배경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가 국가 경제에 대한 벤처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기대해 보겠다며 나선 대목이다. 벤처 업계 스스로도 “타 기업군에 비해 우량 벤처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훨씬 빠르다”며 “조만간 국내총생산의 10% 이상을 책임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명예 회복은 몇 마디 구호나 제스처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어려운 숙제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난 반성과 각오가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그 같은 조건이 마련된다면, 정부와 사회는 벤처 업계가 나라의 동량이 될 수 있도록 밀어줘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 등 벤처 생태계 조성이 선결 과제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5-26 18:58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