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부시의 책 읽기


오는 6월 11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ㆍ미 정상회담 의제는 ‘동맹과 북한문제’다. 일본 외무성은 한ㆍ미 동맹간의 이상기류가 주 의제인 것처럼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외교부는 회담 의제가 ‘작계 5029’ 등이 아니라 북핵 문제라는 태도다.

일본 외무성도 우리 외교부도 놓쳐버린 뉴스가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요즈음 읽는 책에 대한 것이다. 부시는 어떤 일이 터질 때마다 상징적으로 읽는 책을 은근히 알려왔다.

한ㆍ미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절실한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은 5월 9일 탈북자인 강철환(37) 씨가 쓴 ‘평양의 수족관-북한 강제수용소(North Korea Gulag)에서 보낸 10년’(2001년 영어로 번역)을 읽고 있다고 참모회의에서 말했다.

‘평양의 수족관’은 북송 재일동포 2세인 강 씨가 함경남도 요덕 강제수용소에 일가족과 함께 수용돼 10년을 보낸 나날을 기록한 것이다.

강 씨는 92년 단신으로 탈북, 서울에 왔으며 미 의회의 증언에 나서기도 했다.

지금은 조선일보 북한부 기자가 된 그는 5월 18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북한 내부 사정을 분석했다. 그는 “1997년 전후 격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일반 주민들은 배급제와 외부지원이 배제된 채 자생력을 길러 왔지만 군과 특권층은 계속 지원을 받으며 안주해 왔다. 북한의 내부상황은 일반주민 보다 오히려 특권층의 위기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대북 지원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북한의 변화는 중국으로부터 비디오, 휴대전화, 라디오 등이 유입돼 북한 사람들이 외부세계에 눈을 뜬 데서 비롯된 것이지 한국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강 씨의 책을 읽은 부시 대통령에 대해 주변에선 “독재치하에 있는 2,300만 명의 북한주민이 처한 곤경에 대해 대단한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일이 났을 때 읽는 책을 손에 쥐고 헬기를 타거나 여름휴가 중 읽을 책을 홍보 하는 것은 재선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지난해 9월 5일 서울에서 나온 ‘Made in USA- 미국 문명에 대한 새로운 시선’의 저자 기 소르망은 부시와 책(베스트셀러)과의 정치적 상징과 효과에 대해 특이한 판단을 하고 있다.

“문화적 빈곤이 유명한 이 사회(미국)에 책(베스트셀러)이 정치가의 선택을 좌우 한다는 역설이 있다. 부시는 2000년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선거 사무실 서가에 꽂힌 한 줄의 책 중 마이런 매그넷의 ‘꿈과 악몽’을 선택했다. 이 책은 1960년대 미국사회의 혁명적 세력인 브르조아 보헤미안(뉴욕에 몰려든 좌파 지식인들. BOBOS)들의 풍경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들이 미국인들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규범을 어떻게 파괴 했는지 보여 주는 책이다”라고 평했다.

소르망은 매그넷의 주장을 그의 책에 썼다. “부르주아 보헤미안은 몇 년간 코카인을 흡입한 후 해독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반면, 흑인들은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했으며 여전히 마약 중개인이나 중독자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부자와 연예인 스타들 사이에 유행하는 이혼은 가난한 자들의 모방을 조장했고 결국 일시적인 아버지들이 아이와 미혼모를 버리는 사태에 이르게 했다.”

소르망은 요약했다. “매그넷의 책은 빈곤을 가족 가치의 붕괴의 결과로 분석하는 관행을 미국에 일반화 하는데 기여했다. 자본주의는 효과적이며 기독교 윤리는 정당하다. 개인은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는 국가보다 더 잘 안다. 미국은 국내와 국외의 반미주의자에 대항하여 보급될 가치가 있는 보편적 가치(민주주의, 자본주의)를 구현한다는 것이 ‘온정적 보수주의’라고 결론 내렸다.”

부시는 매그넷의 책 ‘꿈과 악몽’을 읽는 모습을 2004년 재선 포스터로 만들고 우향하는 국민을 사로잡아 재선했다.

부시 대통령이 읽은 강철환의 책에는 1만5,000여명의 수용소 죄인이 산 속에 마을을 이루고 살며 노예생활을 하는 처참한 현실이 있다. 그는 15명의 공개 처형을 10년 동안에 볼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워싱턴에 가기 전 기 소르망의 책과 강철환 기자의 책을 꼭 읽어 보길 바란다.

소르망의 책에는 부시의 ‘꿈과 악몽’이 프랑스인의 시각에서 잘 그려져 있다.

강철완의 책에는 ‘선 싸인’이란 포용 속에 자라난 김 씨 왕조 2대의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펼치는 ‘독재’를 9살에서 19살이 되기까지 본 북한의 ‘악몽’이 있다.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부시 면전에서 변명하거나 두둔하려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다.

영국 BBC와 가디언의 베이징 특파원을 14년 간 지낸 제스퍼 베커(‘중국은 가짜다’의 저자, 2001?번역됨)가 지난 5월 1일 낸 ‘위협국가(Rogue Regional)-김정일과 북한의 위협’이다. 이 책에는 김일성, 김정일 왕조의 ‘폭정’의 현장이 제3자적 입장인 영국 저널리스트의 시각으로 분석 요약되고 있다. 이 책을 읽는다면 김 위원장을 위한 변명이나 두둔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부시와 노무현 두 대통령이 보는 한ㆍ미 동맹과 북한에 대한 의견이 같았으면 좋겠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5-06-01 17:17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