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리영희와 조갑제


두 책은 MBC TV 드라마 ‘제5 공화국’이 방영되기 전 나왔다.

첫 번째 책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의 저자는 드라마의 주요 대목인, 1980년 5월 서울ㆍ광주에서 ‘잃어 버린 봄’이 익어갈 때 서울 남산의 중앙정보부 감방에 있었다.

그는 당시 서울에 취재 온 르몽드 특파원이 찾던, 한국 대학생의 ‘메트로 드 팡세’(사상의 큰 스승)라는 올해 76세인 리영희 한양대 전 교수다. 그는 2000년 뇌출혈로 오른쪽이 마비되었다. 그 후 조금 회복해 2년 여 동안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대담 구술로 회고록을 3월 15일에 냈는데, 이 것이 바로 그 책이다. 746쪽의 이 책은 인터넷 서점인 yes-24 com.의 판매순위 142위에 랭크되어 있다.

또 다른 책은 5월18일 나왔지만 ‘제5 공화국’이 방영되기 전에 이미 서문이 써진 것이다. 저자는 전 월간조선 발행인 겸 편집장이었던 조갑제. 그도 부산 국제신보 기자로 1980년 5월 병가원을 내고 광주의 현장에서 취재 중이었다.

책 제목은 ‘조갑제의 다큐멘터리, 제5 공화국-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을 향해 진격하다’이다. 79년 12ㆍ12에서 시작해 80년 9월 1일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존 위컴 유엔군 사령관과 가진 초청 오찬으로 끝나는 312쪽이다. yes.com에서는 판매순위 200 위를 넘어서 있다.

조 전 편집장은 서문에서 책을 낸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훗날 역사는 전두환을 지금처럼 가혹하게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집권과정에서의 유혈사태와 정치자금 모집이란 과오를 덮을 만한 공(功)이 있다. 단임 대통령 약속의 실천과 6ㆍ29 민주화 선언에 의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한국이 민주화로 넘어가는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무엇보다도 1980년대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0.1%로서 세계 200여 개 국가 중 1위였다. 이런 경제성장 덕분에 한국은 민주화의 소용돌이를 감당하면서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격이 다른 나라가 되었다.“

80년 5월 광주 취재로 해직 되었던 그는 국군 보안사령관-계엄사 합수본부장-중앙정보부장 서리-국보위 상임위원장-대통령이 된 전두환에 대한 생각이 변해간 과정을 썼다. “전두환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약 4년 여에 걸친 귀양살이와 옥살이를 한 것도 길게 보면 한국의 민주화를 입증한 사건일 뿐 아니라 그의 인생을 풍요롭게 한 것이 아닐까.

그런 수난이 없었더라면 전두환은 양지바른 길을 질주하다가 인생의 쓴 맛과 참 맛을 보지 못 하고, 그래서 인생을 헛 살고 끝냈을 것이 아닌가. 전두환의 인생역전(逆轉),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의 변전(變轉), 이게 모두 한국 현대사의 위대한 발전과 복잡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의 생각의 ‘변전’은 이번 책에는 자세하지 않다. 속편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판매는 늘 것 같지 않다.

리 전 교수가 80년 5월 17일 저녁 계엄령이 선포되기 전 남산에 연행돼 광주 주모자로 구속되어 2개월간 겪었던 감옥의 혹독함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의 군부 정권하에서 1,012시간이었다. 연행 9번, 구치소행 5번, 언론사 해직 2번(합동, 조선일보), 교수직 박탈 2번. 그는 책을 내면서 출판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조용히 말했다.

리 교수의 책들을 많이 읽은 ‘386’들이 현재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지난날보다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 이젠 이분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상황이 달라지면 지식인은 자기수정(自己修正)을 해야 한다. 단시일에 바꾸려는 것, 비타협적인 것, 독선, 과격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담자인 임헌영(민족문제 연구소장)이 ‘대화’에서 1990년 들어 동구권의 붕괴에 따른 공산주의 사회주의 붕괴에 대한 대안과 그 심정을 묻는 질문에는 이렇게 밝혔다. “인간은 원래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지만, 차원 높은 공동선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이기심’이 없어야 하는데, 문화혁명(중국)을 통해서 또 사회주의 제도로도, 그리고 비록 사이비과학으로 파탄났지만 소련 심리학자 파블로프가 짐승을 이용해 시도한 ‘조건 반사’적 반복 훈련을 통해서도 인간의 속성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어요. 다 실패로 돌아갔지.”

그는 “사회주의의 실패나 퇴보와 반대로 자본주의는 인간의 속성인 ‘이기심’에 호소하는 방법과 제도로 ‘물질적’ 생산을 극대화 시켰고 그것으로 승리 했다고 본다.” “인간의 이기심은 인간의 생물적 속성으로 제도 등으로 일시 억제할 수는 있지만 영구히 바꿀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이를 조선시대 조광조의 급진개혁 유학정치가 이퇴계의 조용한 관조의 유학정치가 되는 ‘자기수정’으로 보았다. 고희를 넘긴 그는 조갑제처럼 자기의 생각을 ‘변전(사물이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바뀜)’시키기보다 ‘자기수정(올바르게 고침)’을 택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생’의 칭호를 듣는 ‘리 선생’은 이를 달리 ‘대화’에서 표현하고 있다. “나는 개혁추진자 조광조에서 이퇴계가 되는 것을 ‘좀 조용해라’하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원숙하게’ 개혁 하라고 보는 것입니다.”

한겨레신문 창간그룹의 한 사람 이였던 ‘60% 언론인, 30% 학자’ ‘리 선생’은 창간 17주년에 ‘자기수정’의 충고를 했다. “끝으로 한겨레는 그 동안 목소리가 너무 높았는데 목소리를 좀 낮추고 알맹이를 채우는데 더 힘을 쏟았으면 한다. 내용이 알차면 목소리는 낮아도 된다. 목소리가 아닌 알맹이로 신문 자체의 성실성을 인정 받아야 한다.”

어찌 어느 특정 신문 만에 대한 요구이겠는가. 세계신문회의가 열리는 2005년 5월을 향한 낮은 목소리일 것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5-06-07 19:03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