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식의 "민족 빼고 감정 빼고"

[한·일 관계사 새로보기] 왜(倭) (3)
황영식의 "민족 빼고 감정 빼고"

우리는 일본을 왜(倭)라고 부르는 데 익숙하다. 오랫동안 그렇게 불러왔고, 역사책에도 그렇게 씌어 있다. 왜(倭)라는 한자의 뜻을 좀 큰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나중에 붙었을 ‘나라 이름’이란 풀이와 ‘키가 작다; 추하다, 보기 흉하다; 외지다; 유순하다’등이 나와 있다. ‘유순하다’와 ‘외지다’는 거의 쓰임새가 없고, 주로 ‘작다, 추하다, 흉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런 좋지 못한 말을 자신이 속한 무리나,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 붙일 정도로 정신 나간 사람들이란 있을 수 없다. 또 한서(漢書)나 삼국지 위서가 ‘왜인’(倭人)이라고 기록했을 당시 일본 지역에는 한자가 전래되기 전이었다. 주변 이민족 집단에 대해 되도록 좋지 않은 이름을 갖다 붙인 고대 중국인들의 나쁜 버릇 때문에 나온 이름일 뿐이다. 그것이 한자 전래와 함께 한반도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나중에 일본이 여러 차례 대외적 공식 국호를 바꾸었지만 굳이 애써가며 그에 따라 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왜’라는 이름이 보편적이었다.

한국인의 뿌리로 여겨지는 예(濊)ㆍ맥(貊)이란 이름도 그리 유쾌하지 않다. 예는 같은 발음인 ‘穢’로도 쓰며 ‘더럽다’ ‘불결하다’는 뜻이 중심이다. 더러는 삼수 변이나 벼화 변 대신 ‘맥’에 들어있는, 짐승을 나타내는 갖은돼지시 변으로 쓰기도 한다. 같은 짐승이라도 호랑이나 곰, 상상의 동물인 용이나 기린이라면 모르겠지만 몸집이 작으면서도 거칠거나 잔인한 짐승이라면 기본적으로 업신여겨 부른 이름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런 중국인의 심술도 최소한의 상식의 틀은 갖추고 있다. 코카콜라를 ‘커코우컬러’(可口可樂)라고 쓰는 데서 보듯, 발음을 최대한 원음에 가깝게 하면서 자신이 부여하고 싶은 뜻을 적당히 부여하는 방식이다. 코카콜라의 경우는 상업적 이유에서라도 ‘입에 맞고 즐길 만하다’는 좋은 뜻을 붙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원을 위협하고, 굴욕을 안기기도 한 북방 기마민족의 이름인 흉노(匈奴)와 같은 경우에는 전혀 좋은 뜻을 부여할 이유가 없었다. ‘떠들썩하다, 흉흉하다, 험악하다’는 뜻을 지닌 흉(匈)을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왜노’(倭奴) 등에서 보이는 비칭접미어 노(奴)를 덧붙였다. 현재 중국어 발음은 ‘슝’이지만 고대에는 ‘훙’‘헝’에 가까웠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애초의 뜻은 알 수 없지만 훈족(Huns)의 후예들이 세운 헝가리 등에서 엿볼 수 있는 이름이다.

이런 의도적 왜곡, 또는 오해가 고대 중국인의 전유물인 것만도 아니다. 일본에는 조몬인의 형질 특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아이누족이란 소수민족이 있다. 그런데 ‘아이누’란 말은 아이누어로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것이 종족의 이름이 된 것은 이들이 스스로를 가리켜 “아이누, 아이누”라고 했던 것이 와전된 결과이다. “나는 사람이야, 우리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우리는 아이누, 우리 나라는 아이누”라는 말로 오해한 때문이다.

그럼 고대 중국인들이 일본 열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어떤 말에서 ‘왜’(倭)라는 이름을 끌어냈을까. 아니, 중국과 접촉한 고대 일본 열도의 사람들이 무엇을 가리켜 ‘왜’라고 했을까. 왜(倭)의 현대 중국어 발음은 ‘워’이고, 고대의 발음도 그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발음도 비슷한 ‘와’이다. 규슈지역에 소규모 읍락 국가를 이루고 살던 야요이인들이 자신을 가리켜 “와, 와”라고 한 것을 중국인이 발음이 비슷한 왜(倭)라는 글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누족 이야기와 비슷한 상황을 그려 보면 ‘와’의 유력한 후보로 우선 떠올릴 수 있는 것이 현대 일본어에도 흔적이 남아 있는 1인칭 ‘와’(我, 吾)이다. ‘와타시’(私ㆍ 나), ‘와가’(我がㆍ 나의), ‘와레라’(我ら) 등의 뿌리인 ‘와’를 떠올려볼 수 있다.

그러나 1인칭 단수나 복수를 나타내는 ‘와’가 나중에 일본의 국명으로 쓰인 ‘야마토’, 즉 ‘다이와’(大和)의 ‘와’(和)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평화와 안온을 뜻하는 화(和)라는 추상어는 나중에 정책적으로 선택했겠지만 기본적으로 무언가 같은 ‘와’라는 발음으로 가리킬 말, 이를테면 한국어의 마을이나 고을, 나라와 같은 말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는 것이 ‘와’(環)다. 일본어에서 ‘와’는 모든 둥근 테두리를 통칭한다. 반지는 ‘유비와’(指環), 목걸이는 ‘구비와’(首環)가 된다. 굳이 둥글지 않아도 대체로 그런 모습이고, 폐쇄회로를 이루면 ‘와’라고 불렀다. 바퀴를 뜻하는 ‘와’(輪)도 둥근 형상을 묘사한다는 같은 어원의 말이지만 표기하는 한자를 달리 하면서 의미가 갈렸다.

한서나 삼국지의 왜인 관련 기술은 야요이 시대 후기의 일이다. 당시의 집단 주거유적으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요시노가리(吉野ヶ里) 유적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책과 환호(環濠)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런 환호집락은 일본어의 언어감각으로 보아 ‘와’로 불렸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의 ‘와’는 방책이나 환호를 가리켰겠지만 그것으로 둘러싸인 마을, 그 마을에서 공동체의식을 느끼며 사는 집단을 가리키게 됐을 것이다.

즉, 국가 개념이 싹트기 전인 당시 ‘와’는 환호집락이나 그에 의해 구획된 공동체, 나아가 부족국가와 같은 소국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또 스스로의 집단이나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동시에 쓰였을 것이다. 우리말의 ‘나라’가 국가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이지만 한반도계 도래인들이 일본에 ‘나라’(奈良)이란 지명을 남겼듯 고유명사로도 쓰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처럼 ‘와’가 환호집락, 고대국가 성립 이전의 소국이나 그 연맹체를 가리켰을 가능성은 일본 국호의 변천에서도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일본 최초의 고대국가는 오늘날 나라현 지역에 두었던 도읍지의 이름을 딴 ‘야마토’였다. 이 ‘야마토’의 정확한 연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나라 산록이라는 지리적 위치와 관련해 산기슭을 뜻하는 ‘야마모토’(山下)가 변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또 발음상의 유사성에서 히미코가 이끌었다는 ‘야마타이’국이 세력을 확대해, 도읍을 옮긴 것이라는 추정도 있지만 어느 것이든 입증되지 않았다.

한자 전래 후 일본인들은 중국의 표기를 그대로 들여와 스스로의 나라를 왜(倭)라고 나타냈으나 읽기는 고유어인 ‘야마토’로 읽었다. 신라인들이 만든 향가에 서라벌이 ‘동경’(東京)으로 표기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나중에 같은 발음에 좋은 뜻을 지닌 화(和)로 표기를 바꾸었으나 여전히 ‘야마토’로 읽었다. 고대국가 성립 이후 큰 대(大)자를 붙여 대화(大和)라고 쓰고 ‘큰 야마토’란 뜻으로 ‘오야마토’, 또는 그냥 과거의 습관대로 ‘야마토’로 읽었고, 8세기에 ‘해뜨는 나라’라는 뜻으로 일본(日本)이란 국호를 썼으나 이 또한 ‘야마토’로 읽었다.

대화(大和)라는 국호는 대한(大韓)처럼 국가ㆍ국민적 자긍심을 담으려는 의식의 소산이겠지만 역사의 구체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곳곳에 환호집락, 즉 ‘와’(環)의 형태로 산재한 소국을 통합해 부족연맹체로, 나아가 고대국가로 만들어 갔다고 볼 때 새롭게 탄생한 ‘큰 나라’는 ‘다이와’(大環)로 부르는 데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소리는 같고, 뜻은 추상성ㆍ이념성이 강한 대화(大和)를 빌려다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한반도에서 ‘와’(倭)를 어떻게 인식했느냐를 직접 살피기는 어렵다. 당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을 직접 더듬을 수는 없다. 다만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과거의 역사서나 그때까지 전해진 이야기를 추려 적은 관련 기록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신라와의 관계가 중심인 이런 기록에 따르면 왜는 기원전부터 한반도 동남부 지역과 갈등과 교류를 거듭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위원


입력시간 : 2005-06-08 15:50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위원 yshw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