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대졸 대통령' 파문


일은 아마 이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CBS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인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제작진들이 한나라당 대변인 전여옥 의원 측에 전화를 해서 출연을 제의한다. 껄끄러운 상대와 마주앉아 토론하거나 논쟁하자는 것도 아니고 단독으로 초대해서 대담하자는데 싫어할 정치인은 많지 않다. 더구나 진행자가 이전에도 몇 번 마주했던 김어준이라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리 부담스러운 자리는 아니라고 판단해 흔쾌히 출연에 동의한다.

방송에 출연한 그날 저녁, 40여분에 걸쳐 이런 저런 정치현안에 대해 특유의 주저함 없는 태도로 답변한다. 마침 진행자인 김어준 씨도 평소 말하고 싶었던 주제를 잘 건드려 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러시아유전개발 의혹에 대해…, 박근혜 대표의 장단점에 대해…. 상당히 유쾌한 분위기 속에 인터뷰를 끝낸 전 의원은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전 의원의 라디오방송 출연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정말 잘 마무리됐다. 혹시 추가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청취자의 항의전화가 몇 통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항의전화는 남아있는 제작자들이 감당할 몫이었을 뿐 이미 방송사를 떠난 출연자로서는 알 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전 의원의 발언은 타이핑되고 있었고, 조금 뒤 그 전문은 해당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 올려지게 된다. 최근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청취자 서비스 차원으로 시행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을 수 있다. 해당 프로그램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오는 청취자들은 한정돼 있을 테니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뷰 전문은 해당 홈페이지에 오르는 것과 동시에 거의 모든 포털 사이트의 뉴스방에도 올라간다.

그 순간 라디오방송사의 작은 스튜디오 공간에서 오간 발언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된다. 공개된 내용에 문제적 발언이 있으면 누리꾼(네티즌)들의 댓글이 이어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그 다음엔 여러 인터넷 신문들이 대담내용을 요약하고 포털 사이트에 이어지는 댓글들을 간추려서 또 다른 하나의 기사를 만든다. 파장은 증폭된다.

이번 전 의원의 발언은 이른바 ‘대졸 대통령 발언’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며칠동안 누리꾼들로부터 댓글 폭탄을 맞았다. 발언의 온전한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당사자의 항변은 거의 반향이 없었다. 필자는 전여옥 의원의 발언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 논의들은 이미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넘치도록 충분히 이루어졌다. 다만 어떤 뉴스가 댓글을 낳고, 댓글이 댓글을 낳고, 그 댓글이 다시 기사를 낳는 순환고리가 과연 악순환인가 선순환인가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이다.

인터넷 매체가 활성화된 이후에 온라인에서 생산되는 뉴스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 뉴스 가운데 대부분은 수많은 댓글이 달리는 논쟁적인 사안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논쟁의 과정에서 사안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눈여겨볼 만한 담론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댓글 논쟁에서 언론 본연의 기능 가운데 하나인 의제설정(Agenda Setting)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말꼬리 잡기 식의 끝없는 댓글 융단폭격은 가끔 파괴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있지만 어딘가 공허하고 허전하다. 그 보다는 현안에 대한, 인간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한 줄의 제대로 된 글이 마음과 가슴을 채워준다. 그것이 저널리즘의 길일 터이다. 뉴스가 인터넷으로 집중되고 있는 현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하는데, 디지털과 저널리즘의 바람직한 양립을 위한 길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종욱 CBS PD


입력시간 : 2005-06-15 19:22


김종욱 CBS PD networking62@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