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검은 안경과 어설픈 웃음


건국 이후 42번째인 한ㆍ미 정상의 만남이 이루어진 6월11일 노무현ㆍ부시 두 정상의 워싱턴 회담에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이런 때 엉뚱하게 지난 41번에 걸친 한ㆍ미 정상의 만남에서의 두 가지 얼룩이 떠올랐다. 첫 얼룩은 1961년 11월11일에서 15일까지 워싱턴에서 있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지난주 칼럼에 소개된 리영희 선생은 이때 합동통신이 선정한 수행기자로 박 의장을 따라 백악관에 갔다. 당시 33세였던 리 기자는 현장에서 지켜본 장면을 그의 회고록 ‘대화’에서 적고 있다.

“케네디는 흔들의자에 두 다리를 쭉 뻗은 채 누운 듯이 앉아서 가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박정희의 인물을 관찰하듯 지그시 바라보아요. 히죽히죽 웃기도 하면서 여유 있는 강자의 태도였어. 나는 아무리 작은 나라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한 나라의 지도적 권력자인데 저렇게 깔보는 태도가 옳은 것일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어. 그 만큼 오만 하더군.”

“한편 박정희는 주한 미군들이 애용하는 레이번이라는 금색 도금 테두리의 짙은 색안경을 끼고, 빳빳한 등받이 의자에 앉았어. 가끔 다리를 반듯이 모으기도 하고 꼬기도 하고 그러더군. 마치 군주 앞에 불려 나온 신하처럼 긴장했어. 난 그런 자세로 미국 군인들이 끼는 흔한 안경에다 짙은 검은 색 렌즈로 자기 눈과 얼굴을 가린 박정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 리 기자는 박 의장의 검은 안경은 얼굴의 흉터를 가리기 위한 것도 상대의 의중을 뚫어 보기 위한 것도 아닌 자기 심중의 좌불안석 때문에 상대방을 똑바로 보지 못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고 보면 박정희의 짙은 안경은 자기 열등의식의 표시이고 강자 앞에 서게 된 약자의 정신적, 심리적 동요를 감추기 위한 장치였던 것 같다”고 썼다.

리 기자가 특종한 이 회담에서 케네디는 조속한 민정이양, 한일회담 재개, 한국군 베트남 파견을 요구했다. 그러지않으면 군사원조 잠정동결, 1차 5개년계획 지원자금 (25억 달러) 백지화 등을 단행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리 기자가 보기에는 박 의장의 방미는 중국의 황제를 찾아가 왕위계승의 윤허를 받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이란 속방의 대통령이 되기 위한 미국 대통령의 윤허를 찾는 것이었다.”

두 번째 얼룩은 2001년 1월25일께. 취임 연설을 한지 1주일도 안된 조지.W.부시 대통령과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 전화’에서였다. “김 대통령이 햇볕정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자 부시는 전화기를 귀에서 뗐다. 그리고 송화구를 한 손으로 막은 채 옆에 있던 잭 프리처드 국가안전보장회의 북한 담당 선임국장을 향해 ‘이 사람,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최근에 발간된 카네기 평화재단 연구원 데이비드 로즈코프의 ‘세계경영’에 적혀 있다. 프리처드 북한 국장이 부시의 대북한 정책이 클린턴의 포용정책을 따르지 않으려는 것이었다며 그 예로 든 것이었다.

로즈코프 연구원은 “김 전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일치하는 면이 있었다”고 전제한 뒤, “부시 대통령의 말은 김 대통령이 북한의 실체를 자신만큼 모른다는 뜻이었다”고 분석했다. 부시 새 미국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평양에 안 가보고도 평양을 내가 더 잘 안다는 것이었다. 부시는 클린턴 전임 대통령이 북한의 ‘폭군’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너무 ‘당근’을 많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2001년 3월7일 (현지시간 하루 전에 도착한) 김 전대통령이 백악관에 오기 직전에 부시는 체니 부통령, 라이스 안보담당 보좌관,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 케런 휴즈 홍보 담당 보좌관등 핵심 벌컨(부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강경 핵심 네오콘)들을 불러 모았다. 전날 파월 국무장관이 “클린턴의 대북정책 중 지킬 것은 지키겠다”는 기자회견에 대한 대책을 김 전대통령과 만나기 직전 논의 한 것이다. 벌컨들의 결론은 “파월이 너무 앞질러 나갔다”였다. (이상은 LA타임스 국제문제분석 컬럼니스트 제임스 짐먼의 ‘벌컨의 등장’(2004년 나옴)에서 참조)

부시는 북한의 김 위원장에게 클린턴이 약속한 것은 지키고 계속 햇볕을 쏟아야 한다는 김 전대통령의 요구를 묵살했다. “북한과의 어떤 협상도 확실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김 전대통령은 예의 ‘어설픈 웃음’을 백악관 기자들 앞에서 흘려야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방미로 부시 대통령을 네 번째 만났다. 노 대통령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2003년 첫 번째 방미에 대한 리영희 선생의 평가다. “박정희의 그 시기에서 40년도 더 지난 2003년에 노무현이라는 한국대통령이, 케네디와 박정희가 마주 앉았던 그 자리에서 부시라는 미국 대통령에 보여주었던 그 비굴함을 나는 이미 40년 전에 확인한 셈이지. 노무현이라는 위인도 자기 딴에는 마치 박정희가 스스로 깡다구가 있다고 생각했던 만큼, 자기도 깡다구가 있다고 큰소리치면서 미국을 방문했던 것이 아니겠냐 말이오.”

리영희 기자의 분석으로는 ‘검은 안경’이나 ‘어설픈 웃음’ 등은 ‘깡다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5-06-15 19:36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