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소리를 이끌어낸 '음악의 사제'정명훈 발탁한 스승

[피플] 세계적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타계
영혼의 소리를 이끌어낸 '음악의 사제'
정명훈 발탁한 스승


정명훈의 스승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세계적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14일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에서 노환으로 숨졌다. 향년 91세.

고인은 1978년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당시 25세의 정명훈(52) 씨를 부지휘자로 전격 발탁,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타계 소식을 접한 정 씨는 “선생은 위대했고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였다”며 깊이 애도했다.

줄리니는 쇼맨십을 배제한 내실 있는 지휘로 ‘음악의 사제’로 불리기도 했다. 또 그는 “위대한 천재들의 음악에 봉사하는 것이 지휘자의 임무”라는 철학과 “내가 느낄 수 있는 음악만을 지휘한다”는 원칙 아래 브람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에 주력했고, 말년에는 브루크너와 말러에 심취했다.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특히 좋아했고 바그너의 작품은 지휘하지 않았다.

줄리니는 1914년 로마 근교 바리에타에서 태어났다.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한 뒤 44년에 지휘자로 데뷔했다. 그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아르트르 토스카니니에서 출발한 이탈리아의 명지휘자의 계보를 잇는다. 하지만 그는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보다 브루노 발터, 푸르트뱅글러, 멩겔베르크 등 북유럽 거장들의 음악적 세례를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그의 지휘는 이탈리아적인 영감과 직관보다는 신중하고 논리적인 게르만적 취향을 다분히 보여줬던 음악으로 평가된다.

고인은 53~56년 라스칼라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가 됐고, 69년부터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것을 비롯해 74년부터 76년까지 빈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또 주빈 메타에 이어 78년 LA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맡은 그는 84년까지 오케스트라를 이끌다 88년 건강 악화로 지휘봉을 놓았다.

그가 남긴 녹음 중 베르디의 ‘레퀴엠’,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는 음반 컬렉터들의 애장품으로 꼽힌다. 1956년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 함께 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도 불멸의 지휘곡으로 남았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6-23 15:17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