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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사 새로보기] 한민족(1)


오늘날의 일본인은 신석기문화의 주인공인 조몬(繩文)인과 청동기 문화 주인공인 야요이(彌生)인의 결합으로 이뤄졌다. 일본에서 얘기되는 ‘일본 민족의 단일성’은 청동기 시대 이후 구성원의 혈통상 커다란 변화가 없었던 데다, 집단정체성 인식이나 역사의식에서 공통분모가 있었으리라는 추정에 의해서 가능하다. 19세기 들어서야 일본 역사에 편입된 오키나와(沖繩)의 류큐(琉球)인이나 특별보호의 대상이 돼 있는 아이누족은 그런 전체적인 동질성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예외적 요소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본인의 집단정체성 인식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한 일본 전국의 통일과 조선침략(임진왜란) 이후에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또 그 이후에도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일본 통치가 강력한 중앙집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 전국을 아우르는 분명한 집단정체성 인식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의 근대화 과정에서 제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금도 일본인들은 ‘고향이 어디냐’를 물을 때 ‘후루사토’(鄕里)를 묻기도 하지만 ‘오쿠니’(お國)를 묻는 일이 많다. 외국인에게 ‘오쿠니’를 물을 때는 어느 나라 출신이냐를 묻는 것이고, 일본인에게 물을 때는 고향을 묻는 것이라고 나누어 이해하면 되지만 원래는 똑같이 ‘나라(국가)’를 묻는 것이었다. 물론 이 때의 ‘오쿠니’는 메이지 유신 이전의 번(幡)을 단위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나가노(長野)현은 과거 ‘시나노’(信濃)번 지역이다. 따라서 옛날에 ‘오쿠니’가 어디냐고 물으면 당연히 ‘시나노노쿠니’(信濃國) 출신이라고 밝혔고, 지금은 ‘나가노현’ 이라고 대답한다. 이는 봉건제의 지방분권적 성격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민족 단위의 역사 인식이 정치적 의미를 띠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민족’ 인식이 태어난다는 세계사적 보편성과도 통한다. 그런 민족 의식의 탄생은 대체로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보다는 지배층의 적극적 의도, 즉 근대적 부국강병의 기초조건으로서 필요성이 커진 ‘국민ㆍ민족 건설’ (Nation Building)의 결과이다.

한국에서의 민족 인식도 다를 바 없다. ‘반만년을 이어온 배달민족’이나 헌법 전문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대한국민…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에서 ‘민족’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구한말의 외세 침탈, 보다 직접적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의 직접적 산물이다.

앞서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도 있었을, 안팎을 구분하는 ‘우리’ 의식조차 몽골 침입 등 외부로부터 정치ㆍ군사적 압력에 대한 정치권력의 위기 의식을 배경으로 한 가공(架空)의 의식일 가능성이 크다. 또 바닥 민중의 경우 그런 안팎 구분의 경계는 ‘민족’을 단위로 하기보다는 신분을 단위로 이뤄졌고, 지역적 공동체 의식의 경우도 생활근거에 대한 위협이 인식의 주된 출발점이었다는 주장이 날로 힘을 얻어가고 있다.

민족의식의 이런 가공성은 혈연공동체 의식에서 한결 두드러진다. 일본의 경우 조몬인과 야요이인의 결합이라고 편하게 얘기하지만 실제 내용은 청동기를 가진 우세한 외래집단과 토착집단의 지배-복속이다. 또한 야요이 시대 후기에 광범위하게 이뤄진 정치적 통합과정은 우세한 철기문화 집단에 의한 또 한 차례의 지배-복속이었다.

따라서 어느 일본인이 지배층의 이야기인 일본 고대사를 ‘일본민족의 역사’, 또는 ‘우리역사’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엄밀하게는 그가 혈통상 그 지배층, 즉 일본 토착세력이 아닌 외래 종족의 후손이어야 한다.

이를 가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조건은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민족 구성원의 혈연적 공통성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거의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한민족의 역사’는 결코 통일신라 시대를 출발점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더욱이 한민족사의 출발점인 단군신화는 물론이고, 고구려나 백제, 심지어 신라나 가야의 건국설화도 핵심 내용은 모두 우세한 정치ㆍ군사력을 가진 외래집단이 토착세력을 복속하거나, 압도적 힘을 배경으로 토착세력을 끌어들여 중심-주변의 지배권 분담을 이루는 과정이다.

단군신화를 예로 들어 보자.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의해 그 내용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단군신화는 특정한 역사서의 이름일 수도 있고, 일반적으로 오래 된 기록일 수도 있는 ‘고기(古記)’를 근거로 하고 있다.

모두들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옛날에 (하늘을 다스리던) 환인(桓因)의 서자 환?桓雄)이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받고,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 그가 환웅 천황이다. 환웅 천황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인간세계를 다스리고 교화했다.

참을성 있게 시험을 이겨내고 인간이 된 곰을 임시로 취했더니 아들을 낳았다. 그가 단군 왕검으로 요(堯)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 만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한편으로 ‘본기’(本紀)를 인용한 ‘제왕운기’의 내용은 단군의 혈통이 조금 다르다. ‘상제 환인의 서자 웅이 천부인 세 개를 받고, 귀신 3,000을 이끌고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다.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이 되게 해 박달나무신과 결혼시켜 아들을 단군을 낳게 했다. 조선 땅을 차지해 왕이 되었으니 신라, 고구려, 남북옥저, 동북부여, 예와 맥이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

두 기록의 신화는 단군의 천신의 직계손인지 외손인지의 차이는 있지만 천부인 3개, 3,000의 무리 등은 일치한다. 이것이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어떤 역사적 사실을 미화한 것이라면 추정 가능한 역사 사실은 비교적 간단하다. ‘천신숭배사상을 가진 북방세력의 한 갈래가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3종의 신물(神物)을 지니고, 3,000명의 날랜 병사를 이끌고 들어와 토착집단과 제휴해 나라를 세웠다.’ 즉, 곰 토템을 가진 토착세력의 여자를 취해 아들을 낳게 한 것과 손녀를 종교적 권위를 가진 토착세력 지도자와 결혼시켜 아들을 낳게 했다는 차이는 있지만 외래세력이 토착세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나라를 만들었다는 기본 사실은 차이가 없다.

이는 고구려 건국 설화인 주몽(朱夢) 설화, 즉 동명성왕(東明聖王) 설화에 주몽이 천제의 손자이자 하백(河伯)의 외손으로 나타난 것과 거의 같은 구조다. 천신의 후예가 원래의 근거지에서 나와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근거지, 나라를 세우는 과정이다. 고구려 건국설화가 부여의 한 갈래가 고구려를 세웠다는 이야기라면, 백제 건국 설화는 고구려의 한 갈래가 백제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모두 토착세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사의 모든 단계에서 ‘일본민족사’를 쉽사리 거론하기 어렵듯 한국에서도 ‘한민족의 역사’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환웅이 우세한 청동제 무기를 갖춘 3,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 이에 저항하다가 끝내 굴복한 토착세력을 ‘민족사’에서 배제할 수 없고, 주몽이 부여에서 남하해 고구려를 세울 당시의 토착민, 온조와 비류가 고구려를 떠나 남쪽에 나라를 세웠을 때의 토착민 등도 마찬가지다. 나는, 또는 당신은 이때 정복한 쪽의 후손인가, 복속된 쪽의 후손인가.

그런 구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역사가 한참 흐른 후의 일이다. ‘삼국유사’나 ‘제왕운기’가 몽골 의 고려 침략 이후에 씌어졌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쩌면 일제의 식민지 강점이 신채호나 박은식의 민족사관을 낳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집단정체성의 근거를 과거의 역사에서 찾아야 할 강한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제왕운기’는 고조선 이후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모든 세력집단을 ‘단군의 자손’이라고 명기했다. 발해를 빠뜨린 것이 우연한 일인지, 구성 종족집단의 차별성을 인정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제왕운기’는 오늘날 우리가 가진 ‘한민족’ 의식의 직접적 근거가 되어 있는 것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 2005-07-1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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