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칼럼] 남도 여행의 단상


지난주 여름 휴가를 내 1박2일로 호남 지방 여행을 다녀 왔다. 마침 장마도 끝나고 찌는 듯한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날짜는 잘 잡았다고 흐뭇해 하면서 말이다. 최근 몇 년간 휴가 때마다 비가 와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날씨하고 무슨 웬수(원수)졌느냐는 말을 듣곤 했는데, 올핸 하늘이 도운 모양이어서 감사하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노부모 등 가족과 함께 승용차를 이용해 담양, 화순, 무안, 영광 등 전라남도 4개 지방을 둘러 봤다. 다소 빠듯한 일정에 주마간산격이 불가피했지만 무작정 떠났다. 평소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기 때문에 이번 휴가에 과감히 도전해 본 것이다.

사실 이 땅에 살아오면서 전라남도 여행과는 인연이 별로 없었다. 휴가 여행은 주로 경기 충청 강원 경상 전라북도 등 전라남도 지방을 제외한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7~8년 전 지리산 자락인 구례 화엄사를 다녀 온 게 전라남도 여행의 시초였다. 그것도 봄철에 경남 하동 쌍계사 입구의 벚꽃 터널과 화개장터를 구경하기 위해 지나다가 들른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전남 지역 여행에 선뜻 나서지 못 했던 것은 상대적으로 낙후한 교통문제 등도 있었겠지만, 역시 정치권의 뿌리깊은 지역감정 논란에 따른 선입견때문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뭔가 시끄러운 곳은 피하고 싶은 본능이 작용한 듯하다. 그런 점에선 이것도 일종의 지역감정 피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지역 감정도 많이 희석된데다, 교통여건도 좋아져 이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여행을 시도해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전남 지방에 대한 여행다운 여행은 3년 전이 처음이다. 여름 휴가를 이용해 남도 1번지로 일컬어지는 강진을 비롯, 해남 보성 여수 등 전남 해안 지방을 돌아본 것이다. 당시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사실상 처음 접하는 남도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다른 지역과는 달리 차분하고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심도 따뜻했다. 특히 빨간 황토 빛 산야는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번 남도 여행은 대나무와 가사 문학의 고장 담양으로부터 시작했다. 책이나 신문을 통해 자주 보아 왔던 대나무 숲을 직접 와서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른 팔뚝만한 대나무들이 빼곡히 하늘 높이 치솟은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민간 정원인 소쇄원과 송강 정철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송강정을 비롯한 다양한 정자들도 아름다웠다.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의 차이는 이렇게 큰 것임을 또 한 번 절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려 하는 것인가 보다.

화순의 운주사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1,000개의 석불과 1,000개의 석탑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운주사엔 각양각색의 석불과 석탑이 산과 들, 바위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세워져 운치를 더해 준다. 특히 산중턱에 벌렁 드러누워 있는 2개의 와불과 버섯모양의 둥근 돌을 쌓아 만든 원형다층석탑, 돌집 안에 두 개의 석불이 등을 대고 앉아 있는 석조불감 등은 다른 사찰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화순 다음에 들른 곳은 무안. 이 곳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사진으로만 보아 온 백련지 연꽃 군락의 장관을 현장에서 확인하고픈 마음에서다. 무안읍에서 한참을 달려 들어가 만난 백련지는 황홀경 그 자체였다.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둘레 3㎞ 넓이 33만㎡의 연못 가득히 백련이 뒤덮고 있었다. 지름 1m 안팎의 쟁반같은 연잎 사이로 주먹만한 하얀 연꽃이 피기 시작해 8월 열리는 백련대축제의 화려함을 예고하는 듯했다.

마지막 행선지인 영광 법성포는 굴비 집산지답게 마을이 온통 굴비 판매 상점과 굴비 음식점으로 가득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히 풍겨오는 비릿한 냄새와 함께 색다른 풍경이었다. 하지만 개발이 많이 이루어져 막연히 생각했던 정겨운 포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남도 특유의 아름다움과 포근한 분위기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일부 시설의 관리 허술과 여행도중 들른 몇 군데 향토음식점의 기대 이하 서비스는 눈에 거슬렸다. 이런 점만 세심하게 개선한다면 웰빙 시대 관광 전남의 미래는 무척 밝을 것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낀 시간이었다.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입력시간 : 2005-07-28 14:09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yb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