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삶 살다 간 '마지막 황세손'

[피플] 조선황실 적통자 이구 씨 별세
비운의 삶 살다 간 '마지막 황세손'

대한제국의 마지막 적통자 이구(李玖) 황세손이 지난 16일 일본의 한 호텔에서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이구 씨는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황제(1852∼1919)의 왕자 영친왕의 아들로 모친은 일본 왕녀 출신인 이방자 여사(1989년 작고)다.

이구 씨의 형 진(晋)이 생후 8개월 만에 비명횡사해 사실상 마지막 황세손이 된 터라 그의 사망으로 조선황실의 적통자는 대가 끊긴 셈이다.

이구 씨가 황세손임에도 이국 땅에서 쓸쓸한 운명을 맞이한 것은 그의 가계 내력에 연유한다. 고종은 모두 9남4녀를 두었지만 성인이 돼 결혼까지 한 아들은 명성황후 민 씨 사이에서 낳은 2남 순종(純宗ㆍ874∼1926), 귀인 장 씨 사이에서 낳은 6남 의친왕(義親王ㆍ1877∼1955), 계비인 순헌황귀비 엄 씨 사이에서 낳은 7남 영친왕(英親王ㆍ1897∼1970) 등 3명뿐이다.

순종은 슬하에 자녀가 없어 영친왕이 이복형인 의친왕을 제치고 황태자가 됐다. 영친왕의 모친 순헌황귀비가 명성황후 사후 비 중에서 최고 서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친왕은 1907년 일본에 인질로 끌려가 1920년 그곳에서 이방자 여사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된다.

이구 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고교 재학중 8ㆍ15 해방을 맞아 점령군인 맥아더사령부의 주선으로 도미, 명문 MIT대를 졸업했다. 그는 뉴욕의 건축회사에서 쾌활한 성격의 독일계 미국 여성 줄리아와 만나 1985년 결혼까지 했으나 신혼의 단꿈에 젖을 새도 없이 황세손이라는 이유로 귀국,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해 줄리아가 후손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왕가 종친의 압력에 못이겨 결혼 24년 만인 1982년 강제로 헤어졌다. 이후 이구 씨는 사업에 손을 댔다가 부도가 나자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났다가 1996년 다시 귀국했으나 또다시 사업에 실패, 일본에서 요양생활을 해왔다.

이구 씨 유해는 지난 20일 어머니가 눈을 감은 낙선재로 돌아왔다. 줄리아 여사는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라며 눈물을 보였다.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은 영화로 제작중이다. 이구 씨의 후계는 의친왕의 손자인 이원(44)현대홈쇼핑 부장을 양자로 입적, 잇게 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7-29 17:2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