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칼럼] TV를 습격한 '바바리맨'


지상파 방송들이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마치 망가지기 경쟁이라도 벌이는 모습이다. 뭔가 커다란 위기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선정, 패륜, 폭력 등이 난무하는 프로그램으로 지탄을 받아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몇 주동안 연이어 터진 파문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듯 국민들을 놀라게 한 것은 TV와 라디오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달 20일 KBS FM 아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자 아나운서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리송한 성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모유 수유와 관련한 것으로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민망할 정도의 야한 내용이었다.

일주일 뒤인 27일엔 KBS 2TV 드라마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 뺨을 때리는 장면이 방영돼 물의를 빚었다. 제작 관계자는 핵가족화의 심화에 따라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공영 방송이 패륜적인 내용을 내보내는 것은 적절치 못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3일 후엔 더욱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토요일인 30일 오후 4시에 시작된 MBC TV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에서 남성 출연자가 옷을 벗고 성기를 노출하는 일이 터져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민영 방송인 SBS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몸 노출 소동 3일 뒤인 8월 2일 여자 탤런트가 진행하는 라디오 심야 프로그램에선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시청자 사연을 여과 없이 방송해 구설수에 올랐다.

보름도 안 되는 사이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시청자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일련의 사태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역시 알몸 성기 노출 사건이다. 세계 방송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으로 해외 언론들도 앞다퉈 보도해 국제적인 망신을 톡톡히 당한 셈이다. 앞으로 방송 윤리 문제에 관한 국내외 언론학계의 연구나 교과서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두고두고 거론될 것이 확실하다.

가족들이 함께 보는 시간대인 주말 오후 생방송에서 거의 전라 상태로 성기를 내보인 것은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성폭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도 주택가나 대학가 등지에서 맨몸에 바바리만 걸치고 있다가 여자가 지나가면 바바리를 열어 알몸을 보여준 후 도망가는 이른바 ‘바바리맨’에 의한 피해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한다. 이번 노출 사건은 바바리맨이 TV에 나타나 전국의 시청자를 향해 바바리의 앞자락을 활짝 열어 젖힌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알몸 노출 소동을 일으킨 두 출연자들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이들은 처음엔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한 것이며, 사전 모의는 없었다. 생방송인 줄도 몰랐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경찰 추가 조사에서 주변 사람들의 증언 등이 확보되자 “미리 세운 계획에 따라 작정하고 벗었고 생방송도 알고 있었다”고 180도 말을 바꿔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공연 중 벗는다고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러면 어떻게 벌건 대낮에 TV에서 이런 낯뜨거운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해당 방송사와 제작진은 불가항력적인 돌발 상황이어서 손을 쓸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출연자에게 돌릴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방송사 내부의 좀더 근본적인 원인에 주목한다.

우선 짚어 볼 수 있는 것이 기강 해이 등 방송사 내부 통제 시스템의 이완이다. 참여 정부 들어 코드 맞추기 논란 속에 조직 개편 과정을 겪으면서 분위기가 느슨해졌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인디밴드 등 사회 문화적 소수 집단을 위해 기회를 준다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사전 검증 작업에 소홀해 이 같은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방송 시장 재편에 따른 위기 의식이 몰고 온 무의식적인 조급성과 자율 감시 기능의 약화다. 인터넷 언론의 확산, 케이블방송의 약진, DMB등 통신업체의 방송 영역 침범 등에 의한 위상 추락과 수익성 악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방송은 이제 상황이 어렵더라도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뼈를 깎는 자세로 거듭나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방송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흐지부지 솜방망이 조치로 끝내면 이 같은 파문은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입력시간 : 2005-08-1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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