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보리'와 '스너피'


노무현 대통령은 8일 휴가에서 돌아와 기자 간담회를 갖고 말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무런 음모도 없다. 전혀 아무런 정치적 의도도 없다. 나는 터져 나온 진실에 직면 했을 뿐이다.” “터져 나온 진실을 어떻게 덮느냐. 음모가 있다는 것은 나에 대한 모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9일 최정환 비서관을 통해 말했다. “모독이나 음모 공작은 국민의 정부가 당했다. YS때 미림팀의 수천 개 도청테이프는 다 어디로 갔느냐. 이 사건의 본질은 YS정부시절 정치 공작 내용을 밝히는 것인데 본질이 완전히 뒤집혔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 심기가 아주 좋지 않다.”

이런 때 정말 엉뚱한 생각을 해 봤다. 만약 3일 세계 최초로 복제개 ‘스너피’를 만들어낸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가 제2의 복제개를 만들면 그 이름을 무엇이라 지을까 였다. 뚱딴지같은 질문에 황당무계한 답이 될는지 모른다. ‘YES24.com’ 인터넷 서점에 베스트셀러 종합순위 23위에 오른 작가 김훈의 장편소설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의 주인공 진도개 수놈 ‘보리’가 아닐까.

‘스너피’는 이번 복제를 해낸 황우석, 이병천 등 교수가 재직한 “서울대 (Seoul National University)의 강아지(puppy)”라는 뜻으로 지어진, 아프간하운드를 아비개로한 복제 강아지의 이름이다.

‘보리’는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를 오래한 김훈이 다시 돌아와 쓴 ‘자전거 여행’에서 본 사람들이 못 살고 떠난 마을에 ‘컹컹’, ‘우우우’ 짖어대는 주인 없는 개들이 본 세상을 썼다. ‘보리’라고 한 것은 “생선뼈나 고깃덩어리보다도 주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보리밥을 잘 먹으니까 할머니는 그게 신통해 ‘보리’라고 불러준” 것이다.

이병천 교수는 ‘스너피’는 미국인이 가지고 있던 족보가 명확한 아프간 사냥개였기에 복제가 가능했다고 했다. 3년 된 아비개는 ‘스너피’와 유전자가 똑같아 아비 그대로 모습이다. 이 개를 얻기까지의 숱한 고생을 이 교수는 털어 놨다. 2002년께부터 시작된 수캐의 체내 세포로 개를 복제하는 것은 어려움에 쌓였다. 개의 난자가 세포와 융합하는 배란의 시기가 뚜렷치 않았기 때문이다. 2003년 말에 가서야 이 교수팀은 하나의 진실을 찾아냈다. “연구원들이 개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개들을 내 몸같이 여기게 되자 신기하게도 연구가 풀렸습니다.” “누군가 황우석 교수님은 소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소복제(‘영롱이’)에 성공했다는 말이 실감 나더군요.”

작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길에서 본) 숱한 공가촌(空家村)이나 수몰지의 폐허에서 개들은 짖고 또 짖었다. 나는 개발바닥의 굳은살을 들여다보면서 어쩌면 개 짖는 소리를 알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고 개에 대한 장편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보리’는 복제 강아지가 아니다. 다섯 마리 중 네 번째. 첫번째는 발이 삐어 어미가 잡아먹었다. ‘보리’는 여러 곳으로 팔려간 형제들과는 달리 수몰예정지구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둘에 손자 손녀가 있는 가난한 집안의 개가 됐다. 이 개는 “세상의 온갖 구석구석을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그 느낌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야 해.

그리고 눈, 코, 귀, 입, 혀, 수염, 발바닥, 주둥이, 꼬리, 머리통을 쉴새 없이 굴리고 돌려가면서 냄새 맡고 보고 듣고 노리고 물고 뜯고 씹고 ?고 빨고 해치고 덮치고 쑤시고 뒹굴고 구르고 달리고 쫓고 쫓기고 멀어지고 일어나면서 이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지”라는 성장소설의 주인공으로 그의 생을 출발했다. ‘보리’는 할머니의 둘째 아들, 어느 서해안의 2톤짜리 어선을 가진 어부의 집으로 갔다. 이 곳이 그의 성장지요 땅이었다. ‘보리’는 암놈인 ‘흰순이’를 그리며 투쟁의 대상인 ‘악돌이’와 다투며 재미있는 성장을 마무리 한다. 아들이 죽자 할머니는 서울로 이 어촌 마을을 떠났기 때문이다.

‘보리’는 할머니와의 작별을 앞두고 턱을 괴고 마지막을 읊조렸다.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 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을 벌렁거릴 것이다.”

작가 김훈의 다른 소설에도 ‘냄새’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건 사람들이 듣는 소리, 짖는 소리, 떠드는 소리, 욕소리, 비명, 비난, 비판에 대한 시어(詩語)인 것 같다. 그래선지 이 소설의 출판사의 선전문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태어나 이런 작품을 한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했습니다. 너무나 모질고 너무나 아름다운 소설이었어요.” 일본에서 어느 독자가 보내온 편지다.

만약 제2의 복제개를 이병천 교수팀이 생산한다면 김훈의 ‘보리’를 꼭 읽어 보길 바란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모독’을 느꼈다면 김훈 소설 속의 ‘보리’가 되어 지난 광복 60년 속에 명멸한 여러 전직 대통령을 ‘냄새’ 맡기를 권한다.

입력시간 : 2005-08-1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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