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朴哲彦과 '3金'


“이놈의 자식들아! 내가 대통령에 미친 줄 알고 있나. 나 대통령 안 해! 이 정치군인들아! 너희가 그런 음모를 해가지고 나를 매장할 수 있다고 생각 했나.”

1990년 4월17일 낮 청와대 별실에서 그 해 2월 3당 합당으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된 김영삼 대표가 총재인 대통령 노태우, 최고위원 김종필, 최고위원 박태준과 갖은 회담에서 쏟아낸 말이다.

3당 합당을 위해 노 대통령과 YS, JP, 민정당 부총재 박태준과의 연결에 나섰던 박철언 정무장관이 4월10일 기자들에게 3당 합당 배경 브리핑을 한 말에 YS가 격분한 것이다.

박 장관은 “내가 3당 통합 과정이나 YS와 함께 간 소련 방문(1990년 3월20~29일)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 진실을 얘기하고 반격을 가할 경우, 김 대표최고위원의 정치생명은 하루아침에 끝날 것”이라고 극언했다. (김영삼 회고록-‘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에서. 2000년 1월 나옴)

일이 터진지 15년 후인 올 8월 박철언 씨는 X-파일 정국에 때 맞춰 그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5공, 6공 3김 시대의 정치 비사’를 펴냈다. 이 책은 현재 인터넷 서점 Yes24.com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8위에 올라있다.

이 책에는 YS가 대통령이 된 2개월 여 후인 93년 5월19일자 그의 일기가 있다. YS가 보복을 할 것이니 그의 아들 김현철과 연락을 해보라는 어느 지인의 충고를 듣고 쓴 것이다.

“나는 혼자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묵은 다이어리를 꺼냈다. 1988년 이후 YS와의 비밀스러운 만남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고 말았다. 나도 약한 인간인지라 극한 상황에 처하니 ‘별 생각’을 다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별 생각’, ‘폭탄선언’은 그가 빠징꼬업자에게서 5억원을 받은 혐의로 1년4개월 동안의 감옥 생활 전후에 늘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부터 1년간 ‘폭탄선언’보다는 현장의 살아 숨쉬는 사실들을 직접 경험한 누군가가 진실 그대로를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썼다”고 회고록 집필의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는 “아픈 역사도 자랑스런 역사도 모두 우리의 역사다. 오늘 우리 사회는 담담하게 보아야 할 우리의 지난 역사를 너무 자의적으로 또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휘젓고 있다. 그런다고 그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순간 해석을 달리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는 1979년 12ㆍ12사태의 두 번째 주역으로서 대통령이 된 노태우를 외사촌 누나의 자형으로, 중위였던 그에게 누나와 함께 영어를 배운 인연으로 맺은 5공, 6공의 주역ㆍ조연들과의 얽히고설킨 역사를 ‘담담히’ 쓰고 있다.

그리고 검사에서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12ㆍ12의 주연 전두환 대통령을 만난 것과, 2003년 DJ의 퇴진까지 YS, JP, DJ가 그의 ‘내각책임제 아래의 남한의 보ㆍ혁 구도체제, 복지사회 건설, 남ㆍ북 통합’의 꿈을 어떻게 무너뜨렸는가를 쓰고 있다.

혹자는 그의 회고록 발간으로 사라진 3김이 다시 등장하는 기현상을 낳았다고 평한다. 그는 3김을 서로 비교를 했지만 어느 누가 더 낫다고는 결론내리지 않았다. 다만 그는 ‘폭탄선언’이 아님을, 그 결과 YS를 폭로하는 것이요, 원한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을 담담히 쓰고 있다.

감옥에서 쓴 세 편의 시로 신인 시인상까지 수상한 그는 아내 현경자가 그의 지역구(대구 수성을) 보궐선거에 나갔을 때의 느낌을 쓰고 있다. “솔직한 내 심정은 진흙탕이나 시궁창과 같은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나 혼자만 억울한 제물이 되면 충분하지 집사람까지 탁류 속에 휩쓸려 가야 하는데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출감 후에도 대구에서 국회의원 2선, 2000년 3선에서 실패하자 정치를 떠났지만 ‘탁류’에서 헤엄치기는 그의 악취미(?)였다. 그는 YS, JP 등에서 현실을 좇는 완숙을 찾기보다 비겁이나 배신이나 정략을 느낀다. DJ에게서도 지역을 못 넘는 현실성을 느낀다.

그는 YS가 3당 합당 전후 40억+a를 받은 사실을 이번에 공개한 것에 대해 말했다. “YS 임기 내에 공개하려면 언제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YS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지도 7년이 지났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도 15~16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고백하고 털자는 입장에서 얘기한 것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합법적이지 않은 정치자금을 준 노태우 대통령도 잘못했고, 그것을 받은 YS도 잘못했으며 전달한 저도 부끄럽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가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보복적인 의미에서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월간조선 9월호 인터뷰에서)

물론 2000년에 나온 YS의 회고록에는 ‘40억+a’이야기는 없다. 1,000쪽이 넘는 이 책?박철언이란 이름은 세 대목에 나올 뿐이다.

어떻든 박철언 전 의원, 전 검사, 청와대 전 정책보좌관, 김일성을 죽기 전 만난 대북특사인 60을 넘은 그. 그가 쓴 3김에 얽힌 20여 년의 현대사는 그런대로 역사다.

YS는 세 번째 나올 회고록 3부에서, DJ와 JP는 앞으로 나올 회고록에서 박철언의 ‘증언’에 대한 새로운 증언을 써주길 바란다. 그것이 바르게 역사를 쓰는 것일 게 분명하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5-08-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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