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제1의 성'과 '제2의 성'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1949년 저서 <제2의 성>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사회적 차별과 억압만 철폐한다면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이후 여성운동의 지침이 됐다.

그로부터 50년 후 미국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1999년 저서 <제1의 성>을 통해 “여성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며 보부아르의 유명한 명제를 뒤집었다.

이제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르다는 것이다. 나아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뛰어나다는 주장도 함축됐다.

이러한 피셔의 여성에 대한 새로운 명제는 그 동안 서구사회에서 이룩한 눈부신 여성권익의 신장에 따른 자신감의 발로로도 해석된다.

한국에서의 여성의 삶도 짧은 기간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지난 10여년 간의 여성 지위 변화와 활약은 압축적 경제성장에 비견될 만큼 인상적이다.

남성의 세계로만 여겨져 왔던 사회 곳곳에서 ‘금녀(禁女)’의 벽은 무너졌고 ‘여풍(女風)’은 이제 일반명사처럼 쓰인다.

그러나 여성들이 성취한 사회적 위상의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적인 향상에서는 여전히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사회에서 금녀의 벽은 무너뜨렸지만, 여성이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데 보이지 않는 차별인 ‘글래스 실링(glass ceilingㆍ유리천장)’이 곳곳에 엄존하고 또한 가정 내 여성의 삶도 제자리걸음을 치고 있다. 한국사회의 여성운동과 정책이 아직까지 보부아르의 명제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올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선언문’을 통해 여성의 지위 변화가 실질적 삶의 개선으로 이어졌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제도적 차별 철폐로만은 여성운동이 주류사회의 남성 중심성을 전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여성들 사이에서의 양극화 문제도 좀처럼 해소되고 있지 못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 불어 닥친 여풍은 이미 여성들의 지위 향상에 수적 기반을 확보했다. 여성들 스스로 미래의 삶에 낙관적 전망을 가질 만하다.

이제 한국의 여성운동과 여성정책도 물리적 양성평등을 넘어 여성의 정체성을 살려가며 남성과 윈-윈 하는 ‘성의 민주화’ 쪽으로 방향선회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의 남성들이 괜히 긴장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10-05 10:23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