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유기농은 신뢰를 먹고 자란다


“쌀겨, 깻묵 같은 것으로 식물성 퇴비를 만들죠. 한약재 찌꺼기도 훌륭한 퇴비 재료가 됩니다. 우분(쇠똥)이나 돈분(돼지똥)은 국제 기준에 안 맞다고 유기농에는 못 쓰게 하더군요.”

유기농을 오랫동안 해온 한 농업인의 말이다. 퇴비는 짚이나 잡초, 낙엽 등을 쌓아놓은 뒤 부숙(腐熟)시켜 만든 비료다. 퇴비는 흙의 산성화를 억제하고 물리성을 향상시키는 등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식물 생장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영양분이다.

농사를 주업으로 했던 나라와 민족에게 퇴비는 아주 익숙한 농업 문화다. 과거 우리나라의 농촌에서는 어디서나 퇴비가 풍기는 특유의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퇴비가 멀어져 갔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대량 생산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근대 자본주의가 깃발을 쳐든 19세기 중엽, 화학 비료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기아와 빈곤이 인류에게 고통을 주던 시대, 논밭의 생산력을 놀랍게 늘려준 화학 비료와 농약은 백년 손님 이상으로 반가운 존재였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과학기술의 폐해를 식량의 터전에서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세기도 못 지나 인류는 오염된 토양과 거기에서 비롯된 환경 파괴, 유해한 식품과 맞닥뜨리게 됐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각광 받고 있는 유기농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생명 순환의 원리를 일찌감치 체득했던 조상들의 유산이다.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하는 데 혈안이었던 우리 농업도 이제 유기농으로 다시 돌아가는 흐름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배금주의 근성이 유기농의 떳떳한 복귀를 가로막고 있다. 돈 몇 푼 더 벌자고 유기농과 친환경을 내세운 거짓부렁을 하는 못된 무리가 있는 것이다. 한 유기농 관계자는 “신뢰와 믿음이 유기농의 근간”이라고 했다. 자연 사랑과 생명 존중의 유기농 정신이 훼손되고 오해 받아서는 안 될 일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10-17 15:10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