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곳에서 벌어진 10ㆍ26 재선거가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혹시 한두 곳에서 질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 속에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중앙당이 총동원되어 선거 운동을 치렀던 터라 한나라당의 기쁨은 더욱 클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 4ㆍ30 재보선에 이어 이번 재선거에서도 싹쓸이 압승을 거둠에 따라 집권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대권 예비 주자들의 마음도 한결 부풀어 향후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한나라당 차기 대권 주자로는 박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이 있다.

한나라당이 재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이회창 전 총재의 행보에도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전 총재는 최근 부쩍 잦아진 정계 복귀설 속에 10월23일 재선거에 출마한 측근인 유승민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대구를 방문했다.

이 전 총재는 이곳에서 지지자들의 모임인 ‘창사랑’ 멤버를 포함한 300여명의 연호를 받아 자신에 대한 지지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이 전 총재는 재선거 이전에도 정치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왔다. 지난 10월14일에는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에 참석해 눈길을 모았다.

2002년 대선 실패에 따른 정계 은퇴 후 일반 대중이 모인 공식 행사로는 처음이다. 18일엔 각계 1만여명이 서명한 시국선언에도 참여했다.

이보다 앞서 두어달 전부터 산행을 시작해 한 달에 한두 번은 산에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산행은 매우 의미 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이 산행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거나 메시지를 전하고, 세를 과시하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측은 이 같은 일련의 행보를 정계 복귀 신호탄으로 보는 시선에 대해선 일단 손사래를 친다.

당사자인 이 전 총재도 아직까지는 “정치 문제에 대해선 관심 없다”며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지난 8월 창사랑이 ‘이회창 명예회복 촉구대회’를 열고 이 전 총재의 명예회복과 정계 복귀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지지자들의 정계 복귀 요구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어서 조만간 이의 현실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가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를 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얼마나 합리적인가는 별개 문제다.

요즘 주변에서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 조짐에 대해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띈다.

나름대로 불가피한 상황이 있었더라도 두 번이나 대선에서 실패한 사람이 다시 나온다면 모양새가 영 개운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지자들 중엔 김대중 전 대통령이 3번의 실패 끝에 대권을 거머쥔 것을 예로 들며 이 전 총재의 3번째 대권 도전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지만, 두 사람이 살아온 정치적인 상황이나 역정이 크게 달라 같이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 전 총재와 지지자들의 입장에선 명예회복을 하고 오매불망 이루지 못한 꿈을 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겠지만 이를 자제하고 정치 원로로서 나라 발전을 위한 또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이 오히려 보기 좋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전 총재가 이 같은 일각의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끝내 정계에 복귀해 대권 주자로 나설 요량이라면 정치 인생의 뿌리인 한나라당에 들어가 정정당당하게 경선을 통해 후보를 쟁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대권 후보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거나, 혹은 경선에서 탈락했다고 신당을 만들어 대권 도전에 나서지 말라는 의미다. 한 마디로 1997년 대선전에서의 이인제씨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이다.

이 전 총재가 대선전에 나설지 여부는 결국 본인의 결단에 달려있다. 하지만 측근이나 지지자들의 요구나 주장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오히려 이 전 총재 개인 생각보다 이들의 요구가 더 큰 변수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생각이 다 합리적이고 옳은 것은 아니다.

이 전 총재 스스로 심사숙고해 정계 복귀 여부를 결정하기를 기대한다.

김양배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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