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임금님의 수랏상과 고관대작들의 술상에서부터 빈자들의 조촐한 저녁 밥상에 이르기까지, 다른 건 몰라도 김치는 어김없이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김치는 술자리와 식사가 있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고 보면 먹는 것 다르고, 입는 것 다르고, 자는 곳 다른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김치라는 것은 이를 먹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진 아이콘이다. ‘화합’과 ‘평등’의 개념에 링크되는 그런 아이콘 말이다.

하지만 중국산 납 김치와, 기생충 김치 파장으로 국내 김치의 양극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명품 김치’의 등장에 따른 움직임이다. 1.4㎏들이 김치가 18만원. 웬만한 직장인이 하루 종일 벌어도 살 수 없는 귀하신 몸이다.

라면 한 그릇을 비우는 데 먹게 되는 김치의 양을 140g으로 본다면 2,000~3,000원짜리 라면 한 그릇에 1만8,000원어치의 김치를 먹게 되는 셈이다. 이쯤이면 한 개그 코너처럼 우스꽝스런 몸 동작과 함께 “우리만 먹는겨(되는겨), 우리만” 하는 패러디도 나올 법하다.

그렇지만, 걱정이 앞선다. 가뜩이나 온갖 갈등의 골로 만신창이가 된 우리 사회에 반 만년 동안 ‘평등’과 ‘화합’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온 김치가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늠하는 잣대로 이용되지 않을까 하는 데서 연유한 걱정이다. 지금까지 먹는 김치로 사람을 가늠하는 예는 없었던 탓이다.

혹자는 이번 김치 파동이 국내 김치 업체들의 경쟁력도 진작시켜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보다 굳건하게 하고, 위생에 관한 한 훌륭한 타산지석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느냐고 말한다.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효과를 얘기하더라도 뒷북치기에 급급했던 식약청의 과(過)가 그 같은 효과에 가려져서는 안될 것이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