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놓고 벌일 본격적인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난달 23일 쌀 협상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한 여파다.

빠르면 내년 3월부터 미국, 중국, 태국산 쌀을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품질과 가격을 앞세운 수입쌀 시판으로 식탁에선 국제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눈을 돌리면 서울 도심에선 대규모 농민시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쌀 협상 비준안 통과로 농촌이 무너지고 농민이 죽게 됐다고 아우성이다. 농(農)과 반농(反農)의 격한 부딪힘은 내전을 방불케 한다.

쌀은 우리에게 생명이었다. 삼국시대 전후부터 주식이었고, 벼농사를 농사의 근본으로 여겨왔다. 이런 역사는 쌀이 단순히 식량이라는 개념을 넘어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 온 동반자이었음을 말해 준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은 이렇게 생겨났다.

그렇게 쌀은 우리와 공존공생함에 따라 생명으로, 문화로, 환경으로 굳은 뿌리를 내렸다. 그런 쌀이 글로벌 경쟁시대에 떠밀리면서 언제부터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IT강국의 환희와 유비쿼터스의 화려함에 가려져 쌀의 생명력은 급속히 약화하고 있다. 숨 쉴 공간을 잃어가고 있다 .

이제 10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면 쌀은 국제무대에 알몸으로 서야 한다. 동반자 없는 외로운 길이다.

1970년대를 고발한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는 12월1일 농민시위의 현장에 섰다. “시위자들과 경찰들의 틈바구니에 있을 때 현장의 호흡과 신음을 가장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그는 30년 전 하층민들의 신음이 지금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쌀을 생명으로 여겼던 농민 전용철씨가 시위도중 숨졌다. 쌀을 부여잡으려는 자들과 쌀 개방은 어쩔 수 없는 조류라는 세계론자들 사이에서 우리의 쌀은 어떤 행로를 갈까.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