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미국의 북한 때리기가 최근 가속화하면서 그 배경과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특히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문제를 작심한 듯 집중적으로 제기함으로써 북미간에 새로운 갈등관계가 조성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낳고 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강경 발언은 12월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져 왔다.

알렉산더 브시바오 주한 미대사가 북한을 ‘범죄정권’이라고 한데 이어 제이 레코프위츠 북한인권대사는 서울에서 열렸던 북한인권 국제대회에서 “미국 정부는 브시바오 대사의 입장을 번복할 의사가 없다”고 두둔했다.

이와 때맞춰 로버트 조지프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차관은 “북한 정권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북한은 핵보유를 선언하고 위폐를 만들고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북한의 달러 위조 혐의에 대해선 워싱턴에서 수십개 국가의 외교관을 초청해 구체적인 증거 자료까지 제시하며 비공개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이를 빌미로 대북 금융제재 조치까지 취했다.

북한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데도 미국 정부가 이렇게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있다. 국내외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핵 해결을 위한 또 다른 압력이라고 분석한다.

6자회담의 9ㆍ19 공동성명 합의 이후에도 핵 문제를 풀려는 북한의 태도에 별 진전이 없자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나 경제적 수단 등을 이용해 핵 포기를 유도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 정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북핵과는 별개로 위폐 제조와 같은 고질적인 불법행위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려는 것 뿐이라고 설명한다.

일각에선 전혀 색다른 주장을 펴기도 한다. 6자회담과 병행해 경제ㆍ외교적인 고립을 통해 북한 정권 자체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미국의 정확한 의도가 무엇이든간에 대북 압박에 따른 북미 갈등 심화는 필연적이다. 북한은 당장 관영 언론을 통해 브시바오 대사를 “예절도 없고 사리도 모르는 불한당” “적대의식으로 이성마저 잃어버린 폭군”이라며 “거족적 투쟁으로 남조선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미국에 대립각을 세웠다.

문제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낀 우리 정부의 대처 방식이다. 미국의 잇단 대북 강경 태도에 대해 정부ㆍ여당이 일제히 반발의 목소리를 쏟아냄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삐걱거리게 만들었다.

북한을 범죄 정권으로 규정한 브시바오의 발언에 대해 정부 관계자가 미 정부에 유감을 표시하는가 하면, 국회의장은 이례적으로 공개적인 비판을 가했다.

한 여당 의원은 브시바오 대사에 대한 본국 소환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고 엄포까지 놓아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위조 달러 문제에 대해선 더욱 혼란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처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어느 한 쪽이 주장한다고 해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며 북한이 전적으로 부인하는 상황인 만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실 관계가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언뜻 중립적인 발언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미국의 주장을 부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구체적인 증거를 내세우며 설명회를 연 이후에는 이를 수긍하는 태도를 보여 일관성 없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이처럼 사사건건 미국의 입장에 반기를 들고, 북한을 두둔하는 이유에 대해 정부ㆍ여당은 남북간의 평화 기조 정착이 우리의 사활적 과제인데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이 같은 과제 실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역으로 북한에 할 말을 하고 잘못을 지적하면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와줘야 할 땐 도와주되 할 말은 단호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 미국의 지나친 발언이나 행위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과오가 있을 땐 이에 대해서도 떳떳하게 지적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갈등 관계의 북미 사이에서 세련되고 현명한 조정자 역할을 해야 국익을 높일 수 있다. ‘허허실실’의 외교 전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김양배 부국장 yb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