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새해 인사 모임을 비롯한 각종 모임에서 으레 듣는 말이다. 이 ‘빌어’는 1988년 1월 이전에 썼다면 맞는 말이다. 당시 사전에서 ‘빌다’는 “①남의 물건을 도로 주기로 하고 가져다가 쓰다.

②남의 도움을 보수 없이 그냥 힘입다”로, ‘빌리다’는 “도로 찾아오기로 하고 남에게 물건을 얼마 동안 내어 주다”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나 일상에서 ①, ②의 의미로 ‘빌다’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을 뿐더러 ‘빌다, 빌리다’ 간의 구분이 모호하여 이 둘을 ‘빌리다’ 한가지로 적도록 한 것이다.

‘빌다’는 첫째,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해 달라고 신이나 사람ㆍ사물 등에 간청하거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호소하다”이다.

둘째,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다”의 뜻도 있다. ‘이 자리를 빌어’의 용례가 위의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빌리다’는 첫째,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도로 돌려주거나 대가를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이다. “친구에게 돈을 빌리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다”가 그 예다.

둘째, “남의 도움을 받거나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믿고 기대다”의 뜻이 있어 “머리는 빌릴 수 있으나 건강은 빌릴 수 없다”처럼 쓰인다.

또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하여 따르다”로도 쓰인다. “기상청의 말을 빌리면 내일 눈이 온다고 한다”의 예를 들 수 있다.

앞으로는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와 같이 제대로 쓰도록 ‘주간한국’의 지면을 빌려 부탁하고 싶다.


김희진 국립구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