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밀린 소신, 눈물의 퇴임식

농민 사망과 관련 사퇴 압력을 받아오던 허준영(52) 경찰청장이 끝내 물러났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있을 때도 “결코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농민단체와 야당, 심지어 여당인 열린우리당까지 자신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자 생각을 바꾼 것이다.

허 청장은 사임의 변에서 “연말까지 예산안 처리 등 급박한 정치 현안을 고려, 통치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농민사망이)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고 소신을 유지했다.

허 청장이 취임 11개월만에 경찰총수에서 낙마함으로써 2003년 12월 도입된 경찰청장 임기제는 최기문 전 청장에 이어 연달아 지켜지지 않은 셈이 됐다.

허 청장은 경찰관이었던 선친의 영향으로 경찰서장의 꿈을 키워오다 80년 외무고시에 합격, 주프랑스대사관 서기관 등을 거쳐 84년 경정으로 특채돼 경찰에 입문했다.

외무고시 1호 출신인 그는 이후 27번이나 보직을 옮기면서 정보, 대공, 수사, 경비, 외사, 방범, 교통 등 치안 관련 전 분야의 업무를 섭렵했다.

허 청장은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프랑스 국제행정대학원을 수료했으며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연수하는 등 이론에도 밝았다.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장, 중앙경찰학교장, 강원지방경찰정장 등을 거쳐 참여정부 출범 때는 경찰 조직 내의 두터운 신망을 바탕으로 다면 평가에서 인정을 받아 청와대 치안비서관에 발탁됐으며 서울경찰청장을 역임한뒤 지난해 1월 경찰총수 자리에 올랐다.

경찰 창설 60주년에 맞춰 취임한 허 청장은 경찰의 숙원이었던 검ㆍ경 수사권 조정에 ‘올인’하다시피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며 조직 내부의 신망을 기반으로 역대 어느 청장보다 경찰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냈다.

그래서 허 청장의 ‘불명예 퇴진’에 따른 경찰의 충격은 더욱 컸고 올 2월 임시국회에서 결론이 날 수사권 조정이 어떻게 귀결될 지 우려하고 있다.

경찰은 허 청장의 퇴임식 날 청사 건물에 ‘우리는 결코 당신을 보내지 않습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십자가를 지고 떠나는 그에게 깊은 애정을 보냄과 동시에 정치적 희생양으로 몰아간 여권을 향해 울분을 토해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