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하는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전문가들에게 한 해의 경제 전망을 묻고 다니다간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란 말이 있다.

아침 저녁이 다른 상황에 사는 그들에게 주간, 길어야 분기별 경기예측 정도만이 의미 있을 뿐이란 얘기다.

이 얘기는 엄청난 속도로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ㆍ디지털 융합)가 일어나고 있는 정보통신(IT)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통용된다.

누구도 디지털 혁명이 가져다 줄 가까운 미래조차 섣불리 짐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간 사회의 가장 오래된 직업인 매춘도 ‘사이버 섹스’로 대체될 것이라는 등 믿거나 말거나 식의 미래상들만 쏟아질 뿐이다.

여하튼 몇 개월이 멀다 하고 뭐라고 딱히 이름을 붙이기 애매한 첨단 디지털 컨버전스 기기가 줄줄이 출시되고, 상식을 뛰어넘는 타 산업 간의 ‘짝짓기’ 서비스는 디지털 마인드로 무장한 세대가 아니고선 도저히 따라잡기 힘들다.

연초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2006년 국제가전 전시회(CES)’에서도 향후 디지털 제품과 산업의 모토는 편리함(모바일)과 즐거움(엔터테인먼트)이라고 전한다.

디지털 혁명이 가져다 줄 우리의 미래상은 대개 편리함, 즐거움 등 긍정적인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홈 네트워크를 통한 ‘디지털 가정’은 ‘꿈의 가정’과 동치된다.

그러나 ‘꿈의 기술혁명’ 이면에는 우울한 미래상도 함께 있다. 우선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바깥 세상과 담을 쌓고 살려는 사이버 코쿤(Cocoon)족이란 신조어가 말해 주듯 디지털 혁명의 모토엔 ‘사람끼리’란 개념이 희미하다.

앞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도 수정되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디지털 혁명에는 양극화의 그늘도 짙다. 디지털 인프라가 취약하고 돈 없는 저개발ㆍ개도국의 국민들은 지난 세기의 빈부격차보다 더 심각한 ‘디지털 격차’를 겪게 된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걱정이 아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디지털 세계가 버겁기만한 세대들 역시 기술 혁명은 소외와 불안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기술과 시장 간의 상호작용만으로 무한 질주하고 있는 디지털 혁명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이 깊어지는 시대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